▲김사연 전 인천시약사회장·수필가.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수필가

친목회에서 회원 자녀 결혼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가족끼리 조용히 혼사를 치르겠으니, 화환을 보내지 말고 참석도 사양한다는 내용이었다. 팬데믹에서 벗어났음에도 구태여 왜 이런 문자를 왜 보냈나 궁금했는데 말미에 혼주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세상에 이런 청첩장이 있다니.

예전에 할머니는 생신날이면 복중에 음식이 상할까 밤새워 풍성한 음식을 차려 놓고 이른 아침, 동네 친구분들을 초청했다. 친구들은 맨손으로 오거나 사이다 한 병만 들고 왔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이 모습을 보고 대처에서 갓 시집온 어느 집 며느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축하 봉투를 받지 않고 공짜로 대접하냐는 표정이다. 당시 애경사엔 인적이 북적북적하는 것이 혼주나 고인의 인덕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마당에 친 빛바랜 차양 아래서 음식을 나누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 미풍양속이었다.

인천시 약사회장을 맡는 동안 기관장들이 취임할 때면 축하 화환을 보냈다. 어느 날, 김영란법으로 시끄럽더니 정문 앞에서 축하 화분조차 반입을 막았다. 새로 부임한 A 기관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축하 화분을 사절하더니 깐깐한 성격으로 원리원칙을 따지며 자생 단체 임원들과 자주 충돌을 빚었다. 한데 모 교육장과 사담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육장은 자신이 승진 심사위원임을 어떻게 알았는지 A 기관장이 고가의 화분을 보냈다고 말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으며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모 기관장 B 씨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화분 대신 영양제를 들고 갔다. 약사회 소식지에 게재할 원고를 청탁하며 약소하나마 원고료 대신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B 기관장은 단호하게 원고 청탁조차 거절했다. 여기저기 얽히지 않고 조용히 임기를 채운 후 영전하겠다는 공직자의 처세술인가 싶었다. 얼마 후 그분의 부친상 문자가 왔다. 그의 성격상 조의금도 거절할 줄 알았는데 평상적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게다가 고인이 지방에 거주했지만, 영안실을 자신이 오래 근무한 직장 근처로 옮겼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부임 축하 선물 사건 이후론 인사를 다닐 때 내가 쓴 수필집을 명함처럼 들고 다닌다. 그런데 내 책 선물로 인해 C 기관장이 곤혹스러웠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기관장을 방문한 일자가 때마침 추석 명절쯤이라 외부 감사의 표적이 되었단다. 책 속에 분명히 돈 봉투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항문학' 창립 50주년 행사 초청장을 받았다. 말미엔 축하 화환, 회비, 찬조금을 사절한다는 문구가 있었다. 출판기념회를 여니 참석해 축하해 달라면서 참가비까지 정해 놓은 통상적인 초청장과 달라 신선감을 안겨 주었다. 바쁜 중에도 자리를 빛내준 손님에 대해 진심으로 예우를 갖춰준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김사연 전 인천문인협회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