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평등기금이 결국 폐지됐다. 100억원에 이르는 기금은 내년 초 일반회계로 편입된다. 1997년 경기도 여성발전기금으로 시작해 2000년 102억원을 조성, 기금사업을 시작했으나 24년 만에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기금 폐지 사유가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를 두고 벌어진 다툼 때문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다. 여성의 지위와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아직 할 일이 산적한 판에 100억대 기금을 허무하게 날려 버리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조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 5월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성 격차 지수'는 조사대상 146개국 가운데 105위다. 2022년 99위에서 다시 100위권 밖으로 밀렸다. 세부적으로 보면, 성별 임금 격차 76위, 경제활동 참여율 85위, 추정소득 119위, 여성 관리직·임원 비율 128위다. 사회문화적 성평등이냐, 양성평등이냐를 따지기 전에, 경제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성별 격차를 줄여나가면 성장 여력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성 평등 정책에 관한 한 앞서 나가던 경기도가 100억 기금을 없앤 것은 명백한 퇴행이다.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성평등' 개념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성과 젠더에 대한 학문적 성과와 세계적 흐름을 수용한 결과였다. 일각의 주장처럼 '이념적 결정'이 아니다. 오히려, 더 포괄적인 '성 평등'에서 한발 후퇴한 '양성평등'으로 회귀하려는 시도가 '이념적 결정'에 가깝다. 아쉽게도 도의회에서 1년 내내 이 문제를 두고 다툼이 이어졌고 결국 조례개정이 불발되면서 기금 사용기한 연장에 실패했다.

경기도는 기금을 활용해 내년에 성평등 공모사업, 여성 친화도시 활성화, 여성 지도력 아카데미 운영 등을 계획하고 있었다. 성평등 촉진과 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도는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적극적으로 검토해주기 바란다. 기금이 사라졌다고 성평등을 향한 발걸음을 늦춰서는 안 된다. 성평등한 사회는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성의 삶의 질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