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프랑스대혁명은 달력조차 바꾸어놓았다. 이성을 중시하다 못해 숭배까지 한 '혁명주체'들인지라 기존의 달력마저 '혁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그때까지 쓰이던 그레고리우스력(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을 폐지하고 새 역법을 제정했다. 1년을 12개월로 하되, 모든 달의 날짜는 30일로 못 박았다. 각 달의 이름도 새로 붙였다. 예컨대, 새로운 해는 그레고리우스력으로 9월22일부터 시작하도록 하고, 이달을 '포도의 달(포월)'이라 불렀다.

'테르미도르의 반동'할 때 테르미도르는 '뜨거운 달(열월)'이라는 의미이고, 7월20일부터 8월17일까지다. 1794년 그 뜨거운 달에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자코뱅파가 실각하는 뜨거운 일이 일어났다 해서 역사학에서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이라 부른다. 프랑스혁명력은 서기 1793년 채택되어 1805년까지 12년 동안 사용됐다.

모든 달이 30일이므로 혁명력 1년의 날수는 360일이다. 지구의 공전주기 근 365일과 닷새(윤년은 엿새)가 어긋난다. 프랑스혁명 주체들은 달력에 표시되지 않는 이 5~6일을 '상퀼로티드'라 이름 붙이고 축제의 날들로 삼았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기간으로 정한 것이다. '상퀼로트'는 반바지(퀼로트)를 입는 귀족과는 달리 긴바지를 입는 평민(민중)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상퀼로티드는 평민들의 축제주간쯤 되겠다. 어쨌거나, 표준규격을 중시하는 합리성과 실제 자연의 이치 사이의 간극을 민중축제로 설정한 발상이 흥미롭다.

축제의 날들은 테르미도르와 과일의 달(과월)이 끝나는 9월17일부터 21일 사이다. 본격 포도 수확 철을 앞두고 한바탕 축제로 기분을 업 시키자는 뜻일까.

하여튼 축제기간이 지나가면 새로운 해의 첫 달인 '포도의 달'이 다시 시작된다. 고백하자면, 오래전 프랑스혁명사 수업 때 배운 내용인데 그동안 날짜를 착각했었다.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성탄절부터 새해 첫날 사이가 '축제의 날'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서양 달력의 주기에 맞춰 한 생을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해마다 크리스마스에서 새해 첫날 사이의 날들은 태양력에도 혁명력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혁명력으로는 '눈의 달(설월)'이다. 그 시기에 유독 바쁜 독자도 없지 않겠으나, 마치 달력에서 지워진 날들처럼 느끼는 보통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 상퀼로티드처럼 축제의 날들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바라건대, 시간의 그늘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된 이웃들을 생각하는 날들로 삼는 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