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브국립대 교수.

올 한 해도 거의 지나 며칠 후면 2024년 새해다. 올 한해는 공습경보 속에서 지낸 한 해였다. 전쟁하는 나라지만 전선이 멀어 직접 전투행위를 보지는 못했지만 수시로 공습경보가 울려, 두려움과 혹시나 하는 공포로 지낸 한 해였다. 공습경보나 무작위 폭격도 전쟁이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으로 키이우에서 살기가 어려웠다. 외교부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역을 여행 금지 지역으로 발령하여 모든 교민은 속히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권고했고, 러시아군이 키이우 20㎞ 가까이 접근하며 우리는 루마니아로 탈출했다가 한국으로 갔고, 7월에 예외적 여권 사용이 허가되어 루마니아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생활했다.

그러다 올겨울 초 단전 단수가 자주 있고, 연초 동네 공습이 있어 다시 루마니아로 탈출했다가 3월에 돌아와 계속 생활하고 있다. 어느 땐 긴 시름 속에, 깊은 한숨 속에 생활하며 지낸 1년이다.

전 세계 많은 나라 중에서 하필 우크라이나에서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전쟁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공부도 학생 가르치는 일도 자의로 한 일이니 남 탓할 수도 없고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시련이라면 시련을 견디는 중이다.

1992년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여러 사람이 우크라이나를 우즈베키스탄과 우루과이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그런 사람은 없다. 이렇게 전 세계 뉴스에 우크라이나가 많이 나오기도 처음이다.

필자에게 우크라이나는 운명이고 사랑이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우크라이나에서 산 날이 많아졌고 국적은 한국이지만 우크라이나 땅에서 호흡하며 물을 마시고 살고 있으니 내 나라와 다름없다.

올 한해 전선은 지지부진했다. 2022년 말 우크라이나군은 빼앗겼던 헤르손과 하르키우를 탈환하며 기세를 올렸다. 몇 개월간 전쟁은 소강상태였다가 2023년 6월 초에 총공세를 한다고 떠들었다. 비등한 군사력으로 어떻게 총공세를 할지 필자는 내심 걱정을 많이 했다. 결론은 총공세는 실패였다. 군사작전이란 은밀하고 기습적이며 적이 모르게 행동해야 하는데 언론에서부터 우크라이나의 총공세를 보도하고 대통령 및 군 지휘부도 총공세를 부인하지 않았다. 제공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천 킬로 펼쳐져 있는 전선에서 어떻게 총공격한다는 것인지 답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크라이나군은 많은 병력을 잃었고 전진은 더뎠다. 러시아군은 견고하게 방어 진지를 굳혔고 우크라이나에 오는 무기체계를 알고 선제공격했으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친러시아 성향의 한국 지인은 러시아는 질 수 없는 전쟁이고 우크라이나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이야기해서 필자와 심하게 말싸움했다. 21세기에 힘 있는 강대국이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빼앗고 자국에 합병하는 일이 벌어진 현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올 9월 신학기는 3년 만에 대면 수업이 시작되었다. 현재 키이우대학교는 1학년 학생만 온라인 수업이고 모든 학생이 대면 수업이다. 러시아군 점령지 학생이 몇 명 있는데, 어떻게 입학했는지 물어보니 점령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지원하여 입학했으며 줌(ZOOM)으로 수업하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빠로즈 헤르손 일부를 점령하고 있지만 완전히 통치하는 것은 아니다. 임시로 군대가 점령하고 있지만 점령지 주민들도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인이고 우크라이나 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곧 12월 말까지 시험이 끝나면 올 한해도 지나고 2024년 새해다. 전쟁 중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수많은 사망자와 전선의 군인들을 생각하면 전쟁을 견디는 일은 어려움도 아니다. 660일을 넘긴 전쟁이 언제나 끝날지, 3년 1개월 1129일간의 한국전쟁을 생각하면, 전쟁이란 정말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정치형태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석원 우크라이나 키이우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