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숙 민주노총인천본부 정책국장.
▲ 이진숙 민주노총인천본부 정책국장.

지난 10월4일 연수구에 있는 장애인활동지원기관에서 일하던 사회복지 노동자 김경현씨가 자신이 일하던 건물 8층에서 투신했다. 유서에는 “이제 그만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곤하네요”라는 말과 함께 기관의 대표와 이사 1인으로부터 지속해서 괴롭힘을 당한 정황이 담긴 메모가 담겨 있었다. 고인이 돌아가신 직후 대책위가 구성돼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두 달 반여가 지나고 있지만 누구도 사과 한마디 없고 진상 규명과 사태 해결은 더디기만 하다. 유족과 대책위의 주요 요구는 가해자들의 사과, 진상규명과 가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벌, 해당 단체의 법인 해산,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지정철회, 인천시의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이다. 사건 직후 유족과 노조가 노동부에 제기한 기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진정에 따라 노동부 조사가 진행 중이고 직장내 괴롭힘 전문위원회에서 12월 말경 최종 결정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 취소에 대해서는 인천시가,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지정 철회에 대해서는 연수구청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노동부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대책위는 기관 이사회에도 역할과 책임을 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에서 이사회는 상설적으로 운영되며 법률적 책임을 지는 조직의 공식 의사결정기구이다. 그런 만큼 사회복지사업법에서는 법인의 이사에 대해 사회복지 또는 보건의료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요건과 결격사유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이번 괴롭힘 사건은 대표이사(센터장)와 이사 1인이 가해자로 지목된 만큼 대책위는 늦었지만 이사회가 엄정한 논의와 판단을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 조항이 신설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 2019년 7월16일, 과태료 부과가 적용된 것이 2021년 10월14일부터이다. 법 시행 이후 직장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매년 늘었지만 과태료 부과 건수, 기소의견의 검찰송치 건수는 한 자릿수 미만에 머물고 있다. 신고가 가장 많았던 2022년의 경우 신고 건수는 8901건이었지만 과태료 부과는 234건(약 2.6%)이었고, 법 시행 이후 2023년 3월까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경우는 199건에 불과했다. 반면 신고 취하는 매년 2000건이 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 수치들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노동부 등의 관대한 처분 관행을 보여준다. 또한 직장내 괴롭힘의 특성상 피해자의 입증 책임, 사건 처리 이후 직장에서 받게 될 불이익과 가중될 괴롭힘 등으로 인해 대다수 노동자가 괴롭힘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직장갑질 119'가 2022년 근로복지공단의 자살 산재 업무상 질병판정서 85건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살 원인에 폭행을 포함한 직장내 괴롭힘이 25건(29.4%)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직장내 괴롭힘이 급기야 노동자들을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내모는 '괴롭힘 자살'인 것이다.

인천시청 앞 한 귀퉁이에서 대책위는 김경현 사회복지사 죽음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오늘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새해에는 이제는 '괴롭힘 자살'로 내몰리는 김경현들이 없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노동부의 올바른 결정과 가해자들에 대한 합당한 처분, 인천시와 연수구청, 기관 이사회의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한다.

/이진숙 민주노총인천본부 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