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준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KBO 자문위원.<br>
▲ 조용준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KBO 자문위원

살다 보면 내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아들딸로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유명인일수록 그 각인은 더욱 깊다. 야구계도 마찬가지이다.

유명 선수 아들이 프로구단에 입단하면 아버지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그러다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면 상황이 바뀐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정후가 그랬다. 그가 데뷔할 때는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부연이 뒤따랐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KBO리그에서 독보적인 선수였다. 이정후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데뷔 첫해부터 타율 0.324를 기록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미국프로야구(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한다. 6년에 총 1억1300만 달러(약 1469억 원)의 대형 계약이다. 활약 무대와 계약 금액으로 한정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앞지른 셈이다.

KBO리그 선수가 MLB에 진출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거나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이다.

KBO리그 선수가 FA 자격을 얻으려면 9시즌을 마쳐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가 부상 없이 9시즌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병역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9년의 세월이면 근육과 순발력도 저하한다. 그러므로 KBO리그에서 FA로 MLB에 진출하는 것은 녹록지 않다.

반면 포스팅은 7시즌 만에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 포스팅은 '이런 선수가 있으니 관심 있는 구단은 입찰해서 이 선수를 데려가세요'라고 공표하는 제도이다. 포스팅을 위해서는 소속 구단의 동의가 필요하다. 구단은 선뜻 동의한다. 구단이 주축 선수의 해외 진출을 쉽게 허락하는 이유가 있다. 소속 선수가 포스팅으로 MLB에 진출하면 포스팅 금액이 전부 구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설사 MLB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선수는 원소속구단으로 돌아와야 한다. 구단은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이다. 이정후의 계약으로 키움 히어로즈가 얻는 포스팅 금액은 약 247억 원이다.

포스팅 시스템에는 선수, 구단, KBO, MLB의 유기적 협조가 필요하다. 선수는 일단 7시즌을 채우고 구단과 합의한다. 그리고 KBO에 포스팅을 신청한다. KBO는 MLB 사무국에 이를 알린다. MLB 사무국은 나흘 동안 리그의 30개 팀을 상대로 비공개 입찰을 진행한다. 그리고 최고 입찰 금액을 KBO에 통보한다. 이때 팀명은 비공개이다. 오로지 입찰 금액만 보고 판단하라는 뜻이다. KBO가 입찰가를 구단에 알리면 구단은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구단이 수용하면 MLB 사무국은 최고입찰가 제시 팀을 알려준다. 이후 30일 이내에 팀과 선수는 연봉 협상을 마무리한다.

KBO는 2001년에 포스팅 제도를 도입했다. 여러 선수가 포스팅에 참여했지만, MLB 진출의 성공 사례는 없었다.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회의론도 등장했다. 2012년에 이르러서야 성공 사례가 나왔다. 류현진이 6년 3600만 달러(당시 약 390억 원)에 LA 다저스와 계약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KBO리그의 포스팅 활성화 계기로 작용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불세출의 야구선수였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MLB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바람의 가족'이 우리나라 야구 명문가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길 바란다.

/조용준 수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KBO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