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어젠다(agenda)는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목표나 원칙을 뜻한다. 20세기 한국인에게는 건국, 산업화, 민주화라는 어젠다가 있었다. 우리 국민은 희생과 노력 끝에 이 세 가지를 완수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어젠다 없이 분열과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에 토지개혁을 했다. 당시 국회의 삼 분의 일을 지주계급에 기반을 둔 한민당이 장악했고, 관료기구에도 같은 패거리들이 다수였다. 토지개혁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우파였지만 조선공산당 출신의 실용주의 좌파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에 기용해 토지개혁에 열의를 보였다. 토지개혁 법안은 1949년 6월에 국회에서 의결된다. 단군 이래 최초로 전 농민이 독립 자영농이 되는 분배구조를 실현한다. 조그만 땅뙈기라도 갖게 된 농민들의 자발적 노동과 교육열로 인해 전후의 폐허에서 경제 발전의 토대가 구축된다.

박정희 정부는 산업구조의 설계자, 은행가, 기업가 역할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협정을 맺으면서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금 3억 달러와 차관 2억 달러를 받아온다. 그는 이 돈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에 쏟아부었다. 또 전기·전화·도로·철도·공항·항만·조선 등 국가 기간 산업을 통제한다. 금융지배로 기업을 관리하고, 시장을 길들이며, 재벌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건설·기계·조선·자동차 등 중공업 대기업과 무역상사가 급성장한다. 유럽이 200년 걸린 산업화를 한국은 30년 만에 압축해 완성한다.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전두환 7년 동안 독재 정권에 맞서는 학생과 지식인, 시민의 저항은 지속됐다. 민주화운동의 전환점은 1987년 6월 항쟁이었다. 6·29선언과 12월 대선을 통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적으로 민주화 이행을 추진한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으로 비로소 민주화가 완성된다. 김영삼의 하나회 해체와 금융실명제 실시, 김대중의 인터넷 초고속망 구축, 국민건강보험 확대는 불가역적인 유산이다. 두 지도자가 보여준 타협의 정치도 귀감이 될 만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고 강화하기 위한 극단적인 이념 전쟁에 몰입했다. 이런 정치권의 20년 성적표는 참담하다. 중산층 붕괴, 비정규직 양산, 빈부 격차 심화, 천문학적인 집값 상승, 사교육비 급증, 저출산 등 서민의 삶은 위험하고 고단하다. 국민의 관심사는 소모적 정쟁이 아니라 민생의 안정이다. 번영과 복지의 조화, 미래 먹거리 창출, 부민 강국을 향한 기획, 구조 개혁 등 새로운 어젠다를 향한 생산적인 논의가 시급하다.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인의 네 번째 어젠다는 과연 무엇일까?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