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 연쇄살인마 열연 유연석]

사고 후 사이코패스된 '금혁수' 역할
살인 저지르고 천진하게 웃는 캐릭터
“얼굴 갈아 끼웠다” 등 호평 쏟아져

데뷔 20년 “선한 이미지 벗고 싶었다 ”
/사진제공=티빙

다정한 눈빛으로 순애보를 말하던 그가 사람 수십 명을 죽이고도 천진하게 웃어 보이는 연쇄 살인마로 돌아왔다. 풋풋한 훈남 야구 선수 ‘칠봉이(응답하라 1997)’부터 일편단심 애기씨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구동매(미스터 션샤인)’, 세상 다정한 소아외과 ‘안정원(슬기로운 의사생활) 선생님’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온데간데없다. 배우 유연석의 이야기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웹툰 원작의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운수 오진 날’에서 선보인 연기 변신에 대해 “최근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선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유연석은 이번 작품에서 사고 후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걸핏하면 사람을 죽여 나가는 사이코패스이자 연쇄 살인마, ‘금혁수’를 연기했다.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오히려 해맑고 천진하게 웃어 보이는 캐릭터다.

그의 과감한 도전은 성공적으로 평가되는 중이다. ‘운수 오진 날’이 공개된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유연석의 연기에 대한 호평은 물론,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모습에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평까지 쏟아지고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이정은마저 “진짜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게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정도”였다고 칭찬을 이어갔다.

▲ '운수 오진 날' 스틸컷 /사진제공=티빙
▲ '운수 오진 날' 스틸컷 /사진제공=티빙

모두가 놀라워할 변신 뒤에는 ‘진짜 공포심’을 정확히 간파한 유연석의 캐릭터 분석이 큰 몫을 했다. 유 배우는 “실제 사이코패스들도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말할 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얘기를 한다”며 “굉장히 죄스러운 표정과 후회의 감정을 담아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얘길 할 때 눈이 빛나는 게 섬뜩하더라. 그런 걸 갖고 와보자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완벽한 분석에도 실제 ‘감정’을 이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혁수가 해나가는 행위들이 납득이 안 가니까 별개의 캐릭터로 인식했다”며 “그냥 자기밖에 모르는 철이 덜 든 아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실수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못 느끼고 살인 행위도 천진하게 설명해주고 즐기는, 마치 놀이처럼 인식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인을 행하고 자신의 모습이 찍힌 블랙박스 앞에서 ‘브이(V)’를 하거나, 매운 핫바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장면 등은 무통증에 정상적인 감정 교류가 전혀 안 되는 사이코패스를 십분 이해한 배우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 탄생한 장면들이다.

그만큼 파격적이지만 완벽하게 ‘사이코패스’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특정 이미지가 굳어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유연석이 쌓아온 필모그래피가 반증하듯, 그는 또 다른 변신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 나갈 준비가 돼 있다.

유 배우는 “배우를 시작할 때 ‘나의 비전은 뭘까?’ 고민해봤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한 번에 각인되는 강렬한 이미지의 외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렇다 보니 선과 악을 넘나들며 ‘어떤 얼굴을 입혀도 잘 소화하겠다’라는 기대가 있을 것 같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며 필모를 쌓아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유연석은 어엿한 선배 배우로서 해야 할 역할도 고민 중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자신이 선배들에게 받았듯, 인간적으로나 배우로서나 기회를 베풀고 프로패셔널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배우를 꿈꾼다.

유 배우는 “후배들이 마음껏 다양한 연기를 시도해보고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현장을 이끌어가는 모습, 주변 스태프를 챙기며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모습들을 본받고 싶다”며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게을러지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