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한국은 서구가 300년에 걸쳐 이뤄낸 산업화·민주화를 30년 만에 이룩했다. 눈부신 압축성장이다. 역사적 축적의 시간을 압축하는 것은 불안정 회로와 같다. 쇼트로 시스템이 오작동하며 여기저기 고장이 나곤 한다.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율, 자살률은 OECD 국가 1위다. 무차별 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불평등과 결핍으로 얼룩진 위험사회가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이다.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타고난 본성 자체일 수 있을까.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 몰려든 사람으로 압박을 받으면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곤 한다. 공간을 만들려는 의도도 있지만 이태원 참사의 서늘한 기억 때문이다. 유족에게 죄송한 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 숨을 못 쉬는 고통을 한 번은 느껴봤던 경험자로 그 고통의 깊이를 어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이 다른 사람의 몸에 흉기가 될 수 있는 압사라는 끔찍한 죽음을 TV 중계로 지켜봤다. 세월호 학생들이 물속에서 호흡을 멈췄던 고통이 끝나기도 전에, 반복되는 사회적 대참사에 20~30대의 대처방식은 무엇일까. 무뎌지는 것이다. 고위공직자 누구도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 책임지지 않았다.

2009년 1월 철거민들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불에 타 죽었던 용산4구역을 참사 하루 뒤 다녀왔다. 전쟁터 같던 남일당 건물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현장을 다시 지나칠 무렵 나이 든 승객들의 표정을 보았다. 주검의 검은 집을 향해 일부러 시선을 피하는 무덤덤한 반응. 개발 시대의 기억을 공유한 40~50대들은 안에서 벌어졌던 참상을 짐작하고도 남는 듯했다. 의도적 회피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려니 생각했다.

1979년 12월12일,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 수장 전두환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반란군을 진압하려 고군분투하다 체포됐다. 이듬해 5월, 반란군은 진압군이 돼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짧았던 '서울의 봄'은 권력만 찬탈하면 그게 정의사회 구현이 되는 박정희 시즌2를 열었다. 1995년 전두환 등이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로 고소되자,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기소처분한다.

무려 30여 명이 죽어 나가며 '해고는 살인'임을 일깨운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은 파업 손실에 따른 47억원을 회사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들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가 노란봉투에 담겨 있어서 '노란봉투법'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지난해 여름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이 있었다. 사측은 노조 부지회장 등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3년 차 대우조선 하청도장공의 월급은 고작 230만원이었다. 원청 사용자의 사용자성을 확대한 노조법 2조,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을 억제하는 노조법 3조가 포함된 노란봉투법이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은 1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TV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에 탄식하다가도 가족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면 아무 일 없는 하루에 만족한다. 불운은 아직 우리 가족에게 닥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운이 나빴고, 나와 가족은 안전하다. 불을 찾은 인간은 동굴에서 탈출한다. 도구를 만들고 경작을 시작한다. 공동체를 이루면서 집단 속에서 안온함을 찾고 외부에 대적하는 DNA가 길러진다. 종족 보존을 위한 인류의 진화 과정은 자연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이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와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사회와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재산, 사람답게 살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헌법은, 정부조직은, 민주주의는 왜 필요할까.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이 묻는 질문이다.

/부성현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