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옥집들(사진 가운데)은 극동방송 옛 사옥과 사택으로 현재 학익동 OCI 공장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극동방송

이층 양옥집을 막 지나온 자동차 한 대가 송도를 향해 해안가를 달린다. 그 뒤로 물 빠진 갯벌에 곧게 솟은 철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인천 학익동 588번지에서 첫 전파를 쏜 국제복음주의방송국(현 극동방송)의 송신탑이다.

1956년 12월 23일 화요일. 갯벌에 130m 높이로 세운 송신탑으로 국제복음주의방송이 라디오 전파를 송출한 것이 인천 방송 역사의 시작이다. 선교사를 파견할 수 없는 동아시아지역 공산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 생중계를 하는 등 지역방송의 역할도 수행했다.

갯벌과 송신탑. '인천다운' 이 조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67년 국제복음방송은 극동방송으로 사명을 바꾸고 서울 마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로부터 30년 후. 1997년 인천시민의 염원으로 태어난 인천방송(후 경인방송)이 학익동 587번지에 주소를 두고 인천 최초의 지상파 TV 방송을 시작한다. 하지만 2004년 방통위로부터 TV 방송허가를 거부당하고(라디오는 iFM으로 유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최근 인천의 방송 주권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전국 광역시 중 유일하게 KBS 지국이 없는 도시. 지역 TV방송사가 없는 도시. 인천시민의 알 권리와 방송주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KBS 인천총국을 만들어 '잃어버린 인천 뉴스 40분'을 방송해야 한다, 부천에 있는 OBS를 계양으로 속히 유치해야 한다, 반대로 유튜브 시대 지상파 방송만 고집할 게 아니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모두 인천의 관점을 전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매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인천 방송 역사에서 재미난 것은 학익동과의 인연이다. 극동방송부터 인천방송 그리고 현재 경인방송(iFM) 그리고 경인교통방송(TBN)까지 인천 연고 방송국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두 학익동에 자리를 잡았다. 왜일까? 인천 원도심 10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봉봉 <단독주택에 진심입니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