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2월12일은 2024년 4월10일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할 예비후보자 등록신청일이 시작된 날이다. 그런데 아직 내년 4·10 총선의 지역구도 선거제도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렇게 황당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처음 설치된 1996년 4월 총선 이후 네 번(1996년, 2000년, 2008년, 2012년)은 2월에 획정이 끝났고 나머지 세 번(2004년, 2016년, 2020년)은 3월에나 획정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획정이 늦어지는 것은 법을 만든 국회가 스스로 공직선거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결과이다.

공직선거법 제24조 제1항에는 “국회의원선거의 선거일 전 18개월부터”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설치하고, 같은 법 제11항에는 “선거구획정안과 그 이유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기재한 보고서를 ... 선거일 전 13개월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같은 법 제24조의2 제1항에 의해 국회가 “국회의원지역구를 선거일 전 1년까지 확정하여야 한다.” 선거구획정을 총선 1년 전에 마치게 하는 이유는 유권자에게 후보를 고를 시간을 충분히 주고 후보들에게는 더 공평한 기회를 주며 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획정이 제 일정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정당의 추천을 받아 구성되기 때문에 양당의 대리인으로서 서로 싸우며 날을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완전히 틀린 주장이다. 획정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지역구 의원정수이다. 국회가 지역구 의원이 몇 명인지 안 정해주면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국회는 매번 정쟁으로 국회의원선거제도를 2월에나 정해왔고 이에 연계된 비례대표 정수와 지역구 의원정수도 덩달아서 늦게 정해졌다.

그래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선거제도도 빨리 고치고 의원정수도 서둘러 확정하기를 끊임없이 독려했다. 기다리다 못한 국회의장은 12월 1일 아예 현행 지역구 의원정수(253명)를 기준으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5일까지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의원정수를 정해주자 획정안은 닷새 안에 국회로 제출되었다. 2016년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획정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입장에서 이번 김진표 국회의장은 몇 가지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본다.

첫째, 김진표 국회의장의 파격은 앞으로 선거구획정의 일정을 상당히 앞당길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획정이 여야의 합의에 기초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와 지역구 의원정수가 확정될 때까지 기다린 다음인 2월이나 3월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국회의장이 의원정수만이라도 결정해서 예비후보자 등록 전에, 심지어 선거 5, 6개월 전에 획정을 마치게 하는 전환점을 만든 셈이다.

둘째, 김진표 국회의장의 파격으로 선거구획정에서 국회의장의 위상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획정안에 대한 여야의 이해득실이 다르고 이에 따라 정개특위에서 서로 손질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국회의장이 정한 지역구 의원정수 253명에 대해서는 존중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따라서 앞으로 획정안이 조금 달라지고 선거제도가 미정이라도 지역구는 거의 정해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공직선거법 제24조의2 제3항에 따르면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 선거구획정안을 다시 제출하여 줄 것을 한 차례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같은 법 제4항과 같이 “그 요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새로운 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현재로써는 정개특위가 언제 합의를 봐서 획정안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회가 서둘러서 획정안에 합의도 하고 속히 선거제도도 확정해야 할 때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