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사망자가 1만700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절반이 어린이 희생자다. 가장 최근 접한 사진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남자들을 팬티 차림으로 줄지어 무릎 꿇린 장면이다. 1980년 5월 광주의 영상이 떠오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대원이라 주장하지만, 외신은 상당수가 민간인이라고 전한다. 설령 민간인이라 하더라도 저리 벌거벗겨 굴욕을 주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진짜 하마스의 아지트라 해도 난민이 들어찬 병원을 마구잡이로 폭격해서는 안 되듯 말이다.
<꽃다발을 던지는 사람>. 그라피티를 그리는 뱅크시가 2005년 예루살렘 어느 차고 벽에 남겼다는 그림이다. 복면 차림의 젊은 남자가 시위 현장에서 무언가를 막 던지려는 찰나다. 1980~9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모습과 영판 같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것은 꽃병(화염병)이 아니라 꽃다발이다. 흑백 그림인데, 꽃다발만 채색이 되어 있다. 가자지구든, 서안지구든 팔레스타인은 '거대한 감옥'에 다름 아니다. 억압과 폭력에 평화로 맞서자는 상상력은 한낱 풍자일 뿐이었나.
하마스는 지난 10월7일 '까쌈 로켓'을 퍼부으며 이스라엘 기습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 사람 1200명이 사망했고, 240여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화력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 하마스가 이런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절망에서 비롯된 '자살적 공격'이었을까. 예전 베트콩처럼 땅굴(가자 메트로)에 숨어 장기전을 펼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이 전쟁이 끝나나.
주말이 지나면 유럽 전역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는 뉴스가 전해진다.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시위도 없지 않으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훨씬 많은 듯하다. 즉각 휴전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에 상정되었으나,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영국이 기권하면서 안보리 이사국들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부결되고 말았다. 휴전이 “테러리스트에게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무차별 살상이 키울 미래의 테러리즘이 더 두렵다. 하마스를 향해 꽃다발을 던져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한국에서는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미약하다. 일부 활동가들이 꾸준히 집회를 가지지만 유럽처럼 대중적 시위는 진행된 적이 없다. 지금도 10분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다친다. 한국인도 힘껏 꽃다발을 던져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