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br>
▲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

교육부가 지난 8월24일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12월1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현직 교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학령인구 감소와 직업계고 선호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이유로 수년간 신입생 미달에 시달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보여진다. 지역 협약형 특성화고 도입과 학과 개편, 교사 전문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교육부의 방안은 질 높은 직업계고의 도약을 통해 미래 산업 수요에 맞춘 인재 양성을 위한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직업교육에 몸담은 필자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앞서 직업계고의 육성과 발전을 위한 여러 정책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효과가 지속적이지 못하고, 직업계고에 대한 경시 풍조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였기에 이번 정책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우려감도 적지 않다.

직업계고는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활성화되었다. 당시 노동 시장에서 요구되는 인력들을 공고와 상고 중심의 직업계고에서 배출하며 조국 근대화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직업계고의 긍정적인 기능과 사회적 역할이 있음에도 여전히 직업계고에 대한 편견과 경시 풍조는 중등 직업교육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진 학령인구의 감소는 중등 직업교육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 시절 강력한 고졸 채용 정책이나, 대입 실업고 특별전형 확대 정책 등이 직업교육에 훈풍을 불어 넣기도 하였다. 직업계고 현장에서는 변화하는 산업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학과 재구조화, 실습장 현대화 등의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 직업교육 경쟁력을 몇 단계 강화했다. 이런 활성화 정책과 학교 현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직업계고에 대한 편견과 경시 풍조가 여전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직업계고의 순기능을 덮고 있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걷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 이유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대주의에서 찾고 싶다. 사농공상은 중국에서 기원전 1000년경부터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후기에 유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백성을 선비, 농부, 공장(工匠), 상인으로 나누고, 직업을 기준으로 신분 질서로 구분하고 차등 적용하는 기준으로 사용되어왔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서 “하늘이 백성 내니, 그 백성은 사농공상(士農工商) 넷이로세. 네 백성 가운데에서 선비가 가장 귀하도다. 양반으로 불리면 이익이 막대하네. 농사나 장사 아니 해도 문학서와 역사서를 대충 공부하면, 잘 되면 문과 급제, 못 되어도 진사로세. 궁한 선비라도 시골에 살면 나름대로 횡포 부릴 수 있지. 이웃집 소로 먼저 제 밭 갈고, 마을 백성 일손 빌려 김을 맨다 한들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랴. 그런 놈에겐 코에 잿물을 붓고 상투 잡아 도리질 치며 귀밑 수염 다 뽑아도, 감히 원망 못 하느니라”라는 표현을 보면 사농공상의 귀천론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수백 년 동안 지배해 오던 유교적 이념이 잔존하여 봉건제 계급사회의 귀천론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가치관은 대한민국에 과열된 교육열을 발생시키고 중등 직업교육에 대한 편견과 교육의 서열화를 발생시키고 있다.

사농공상의 가치관과 풍토의 잔존물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이상 중등 직업교육의 육성을 위한 어떤 정책도 그 정책의 생명주기와 함께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중등 직업교육은 중흥기와 쇠퇴기를 반복할 것이다.

근본을 세우면 길이 열린다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마음으로 직업계고 위기 문제를 접근해야한다.

중등 직업교육의 중단기 지원 정책과 더불어 잔존해 있는 사농공상의 전 근대적인 가치관과 풍토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해결책에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함께 동반되기를 바란다.

/이현준 영화국제관광고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