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독수리 같이 흘러 다니다가

산타페였던가? 프리웨이 한가운데서

이국 경찰에게 붙들렸다

뒤틀린 손목 붕대로 싸매고

눈물 훔치다가

진짜 프리웨이는 어디 있느냐며 꺽꺽 거리다가

신호위반입니다!

이국 경찰이 내 덜미를 잡아 세웠다

나는 붕대 손목을 치켜 올리며

이제야 뭐 좀 해 보려는데 해는 지고

시가 겨우 좀 떠오르는데

사방에서 밤이 내려오고 있어요

눈물이 앞을 가려

그만 신호를 못 보았어요

 

경찰은 멈칫 내 위아래를 스캔하더니

 

그럼 신호를 바꿔야죠

자, 푸른색! 어서 가세요

이게 인생이요

 

그날 그는 누구였을까

 

내 손에 붕대 여전히 감겨 있고

사방에 저녁이 오고 있는데

프리웨이 신호를 바꿔 줄

그 사람?

 

 

▶프리웨이는 고속도로다. 그런 프리웨이에서 신호위반으로 이국 경찰에게 붙들린다. 고속도로에서 신호위반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어디 그뿐인가. 시인은 프리웨이 한가운데에서 진짜 프리웨이가 어디인지를 찾는다. 프리웨이에서 프리웨이 찾기? 그렇다. 이 시에서 프리웨이는 삶(인생)과 시 쓰기를 환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진짜 프리웨이”를 찾기 위해 만족하지 않는 삶, 끊임없이 깨어 있으려는 자의 의지와 실천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어느덧 등단 54년째를 맞이하는 노시인에게 만족과 멈춤은 죽음의 길이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 삶도 시도 적당히 멈추는 것일 터이다. 만족하며 사는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손목이 뒤틀리고, 사방에 저녁이 오고 밤이 내려오더라도 자기 영혼을 잠재우지 않는다. 늘 깨어 있기에 손에 붕대를 감고서라도 계속 운전을 한다. 눈물이 앞을 가릴 만큼 고통스러운 자리지만 기어코 그 자리에 앉는다. 문정희 시인은 그런 시인이다. 그러면서 그 세상과 끝까지 맞서며 질주하려는 깨어있는 정신의 소유자. 노시인의 의지와 영혼이 숭고한 이유이다. 그래, 살아봐야겠다!

▲ 강동우 문학평론가<br>
▲ 강동우 문학평론가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