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

내년은 냉전이 종식된 지 35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프란시스 후쿠야마를 필두로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보다 자유로운 세상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렇다면 후쿠야마가 예측했던 것처럼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규범에 근거한 세계로 이행했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낙관론은 미·중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보듯이 진영 간 가치동맹이 강화되는 다극화 추세에 힘을 잃고 있다. 꼭 30년 전 새뮤얼 헌팅턴이 예측한 대로 문명 간 갈등이 이데올로기 대결이 사라진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이념에 기초한 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의 가치동맹은 한·미·일과 북·중·러 간 진영동맹으로 나뉘면서 신냉전으로 표출되고 있다. 문제는 지역에서의 가치충돌이 우리의 대외관계의 폭과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유민주적 가치는 무엇일까. 국가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가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기억되고 전승될 수 있는 특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 노력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고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 계승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가 대내외적 위기에 처할 때 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할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국가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국가정책 중 하나가 바로 보훈정책이다.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은 정부수립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수호의 가치가 먼저 보훈 이념의 핵심가치로 정립됐다. 이후 조국독립과 민주발전이 추가되면서 지금의 보훈가치 체계로 발전했다. 다시 말하면 조국독립, 국가수호, 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야 할 국가 정체성이자 자유민주적 가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훈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보훈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보훈가치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특징을 보인다. 대부분 국가의 보훈정책이 지향하는 가치는 국가수호 즉 안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수호 이외에 조국독립, 민주발전 등 보훈가치가 넓으며 이에 따라 보훈대상자의 성격 역시 이질적이기도 하다. 물론 각 나라가 처한 역사적, 정치사회적 환경에 따라 그 나라가 추구하는 보훈가치와 그에 따른 대상자 선정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보훈가치들이 균형적으로 융합되어야 자유민주주의가 공고히 발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보훈은 매우 가치평가적이라 보훈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훈은 갈리가 말한 '근본적으로 경합하는 개념'이다. 조국독립의 가치에 사회주의 계열이 보훈대상자가 되면서 국가수호의 가치와 충돌했다. 또 민주발전의 가치 역시 국가수호 가치와 충돌하는 일도 있다. 역대 정부 모두 정치·사회적 지지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훈을 일종의 헤게모니로 활용해 확대한 것이 이유 중 하나다.

보훈가치들이 혼란을 주거나 갈등을 초래한다면 그 보훈은 좋은 보훈이 아니다. 경합하는 보훈가치들이 충돌하지 않고 각 가치의 역사성을 올바르게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권위가 될 수 있고 그래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지난 8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이 개정되면서 인천5·3민주항쟁이 법률에 명시됐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대적인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가 예고되어 있다. 보훈의 가치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초래해서는 결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뿐만 아니라 인천시장의 균형 잡힌 리더십이 필요하다.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