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우리나라 전보 역사의 효시와 같다. 1885년 인천-서울 첫 전보가 전해졌다. KT는 통신 발전 등을 이유로 12월15일부터 전보 기능을 없앨 방침이다. 사진은 대한제국 당시 전보지이다. /사진제공 - 국립중앙박물
▲ 인천은 우리나라 전보 역사의 효시와 같다. 1885년 인천-서울 첫 전보가 전해졌다. KT는 통신 발전 등을 이유로 12월15일부터 전보 기능을 없앨 방침이다. 사진은 대한제국 당시 전보지이다.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

지금의 정보 강국 '인천'을 자리매김한 첫걸음은 1885년 8월25일 인천-서울 간 국내 첫 전보 발송이다. 한 달 뒤 15일부터 전보가 사라짐에 따라 인천 통신 역사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KT는 '115전보 서비스'를 12월15일부터 종료한다고 15일 밝혔다.

국내 전보 도입 138년 만으로, 앞서 2018년 4월8일 국제 전보 서비스는 종료됐다.

인천은 우리나라 전보 역사의 첫 장을 열었고, 다양한 통신 기능도 설치됐다.

1885년 8월20일 한성전보총국이 만들어진 5일 후 서울∼인천 간 첫 전보가 보내졌고, 1884년 11월에는 지방우체국 최초의 우정총국 인천분국이 세워졌다. 1923년 12월10일 새로 조성된 인천우체국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됐다.

인천은 1883년 개항 후 우리나라와 외국 간 교역 대부분을 담당한 만큼 통신 기능이 주요했고, 이 때문에 인천 감리서에는 전화, 전보, 우정 기능이 설치됐다.

1896년 10월 인천 형무소에서 사형을 앞두고 있던 청년 김창수(김구) 선생의 목숨을 살린 것 또한 당시 인천의 발 빠른 통신 기술 때문이었다. 여전히 고종이 김창수를 살린 통신 장비가 '전화' 인지 '전보'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