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고문치사 사건 후유증으로 서슬 푸르던 권부가 가을바람에 날리는 나무 잎새처럼 처량하다. 일은 폭행 수사관 구속에 그치지 않고 일파만파, 마침내 검찰청장 법무부장관까지 밀린 것이다. 權不十年이라 하기 보다 花無十日紅을 방불케 하는 뒷맛이다.
일러서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무서울 것 없는 권력 총 본산을 쑥대밭으로 만든 저간의 사정을 감안하면 백 마디 말을 압도하는 설득력을 지녔다 할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대목은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쫓는다"(死諸葛 走 生仲達)는 고사니 그 배경(三國志)은 대략 이렇다.
아시다시피 제갈량은 유비의 三顧草廬의 간청을 받아드리고 나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친 전략가이자 의리의 사나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는 만년에 숙적 사마달과 대전 중 병사하였거니와 유언으로 자신의 죽음을 감추는 양동 작전을 펴게 함으로서 적을 물리쳤다.
물론 이번 사건과 옛 고사간에는 하등 관련이 없다. 굳이 인용하는 까닭은 원통하게 죽은 넋은 예나 지금이나 어느 순간, 어떤 형태로든 간에 나타난다는 교훈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갈량은 몸소 싸움터에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후주(後主)에게 바친 '出師表'는 예로부터 "이를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고 전해 오듯 구구절절 가슴을 친다.
공교롭게도 엊그제 퇴임장관 사과문은 앞서 장관이 남긴 퇴임사와 대부분 구절이 같다하여 입방아다. 하기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진심으로 죄송스러운 사죄말씀"은 비일비재하였으니 문안작성자가 그 때 그 때 이름만 바꾸면 되려니 했던 모양이다.
한편 장관 떠나는 장면을 비치는 화면에 거슬린 또 다른 대목은 가슴에 단 화려한 난 꽃. 아무리 석별을 아쉬워하는 자리라 할 지라도 스스로 무엇 때문에 물러나는 가를 되새겼다면 모름지기 '검은 리본'이 어울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짧은 재임기간이나마 실 타레처럼 얽힌 정국에서 그 나름의 질서유지를 다 하고자한 노력을 과소평가 하지 않는다. 아울러서 사건폭주와 범죄의 지능화 된 작금, 피의 사실을 해명할 증거확보에 때로 과열분위기가 조성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상상되고 남음이 있다.
그러나 "열 사람 범인을 놓지 더 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범법자를 만들지 말라"는 法諺이 다름 아닌 '인권정부'하에서의 가혹행위로 빛 바랬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피의자가 취조과정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권경시 풍조는 한마디로 요약해서 진술거부권의 정당성을 무시한 자백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다. 오늘 날 물리적 방법으로 이끌어 낸 '자백'의 상당부분이 뒷날 진실이 아닌 무고(誣告)로 판명된 사례는 사직당국이 더 잘 알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뒤늦게 나마 이를 예방할 제도확립과 고문 강압수단에 의지하지 않는 과학적 증거능력 보완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 '개과천선'의 대상은 피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피의자로 하여금 인권의 주 대상으로 다루지 않은 관련자 모두에 해당됨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검찰청장은 작별하는 자리에서"처음 맡겨진 짐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범죄와 싸우는 양식 있는 검찰 관계자의 노고는 아무리 치하해도 모자람이 없다.
따라서 그들을 거듭나게 할 사기진작에 새로 등단할 수장은 실추된 위상을 되찾을 비장한 '出師表'가 바라마지 않는다. 국민은 매양 되푸는 구두선 격인 사과문에 신물 내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