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운행과 업체·병원 간 갈등 유발, 그리고 초유의 환자 이송거부 사태까지. 인천일보 기획취재를 통해 드러난 사설 구급차 문제는 정부가 독단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까지 왔다. 국민 생명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설 구급차 문제를 사회 공론화 테이블에 올려 꼬인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치솟는 물가·인건비에도 10년째 '제자리'
구급차를 이용할 경우 환자가 내는 비용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서 정한다.
해당 법을 살펴보면 10㎞ 이내 운행 기준인 기본요금이 일반 구급차 3만원, 특수 구급차 7만5000원으로 산정돼있다. 10㎞ 초과 시 1㎞당 각각 1000원, 1300원씩 비용이 추가된다. 할증시간(자정~오전 4시)과 인력 추가에 따른 비용도 별도로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는 비용상승분을 보완하지 못해 수년째 논란이다. 이송처치료는 1995년 법 제정 이후 책정됐다가 2014년 한차례 인상됐다. 인상 전 기본요금은 일반 구급차가 2만원, 특수 구급차는 5만원이었다. 2014년에 적용된 비용이 지금까지 동결됐다.
10년 사이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국석유공사 통계에서 경기지역의 자동차용 경유 연간 평균가격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최저 1100원대, 많아야 1300원대를 유지하다 2022년 1800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건비 역시 최근 운전기사 300만원+(플러스), 응급구조사 250만원+(플러스) 정도로 형성돼 10년 전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직원 식대, 사무실 임대료 및 운영비, 각종 세금 등도 업체가 감수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은 한 푼도 없다. 건강보험도 적용 안 된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세계적 경제위기에 소위 '남지 않는 장사'는 점차 심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환자에게 부당한 요금을 징수하거나 구급차를 용도 외로 사용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수익 목적'이 꼽힌다. 업계에서는 같은 영업구역 내 업체끼리 분쟁을 빚고, 환자 이송을 조건으로 병원에 추가 비용을 받는 등의 '탈법 영업'은 현행 이송처치료와 무관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R업체 관계자는 “보조와 지원 없이 사업자가 자비로 운영하는 데, 막말로 먹고살기 힘들면 불법이든 편법이든 온갖 방법을 써서라도 채우려고 하는 게 당연하다”며 “요즘 구급차 업체가 환자 이송업 하나에 그치지 않고 의료기기 판매업이니, 장의업이니, 요양보호사 파견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는 게 왜 그러겠냐”고 말했다.
일반 구급차가 사라진 것도 결국 수익성 탓이다. 경기도에 신고된 231대의 구급차 가운데 일반은 32대, 고작 13.8% 비율을 차지한다. 총 35개 업체에서 절반 이상(54.5%)은 일반 구급차를 1대도 보유하지 않을 정도로 그나마 비용이 더 붙는 특수 차량만 취급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매달 200~500만원의 적자를 면치 못하는 업체가 상당하다.
▲'질서와 원칙' 모두 무너진 시장
인천일보가 업계의 내부 사정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정상적인 구급차보다 '지입 구급차'가 더욱 많은 실정이다.
응급환자이송업은 최소 5대의 특수 구급차와 자본금 2억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혼자 감당이 어려운 사업자는 돈 받고 구급차를 빌려주는 방식의 지입을 활용하고 있다. 지입을 두지 않는 도내 업체는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지입 규모는 85%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입 구급차는 업체 통제하에 있지 않고, 개개인이 영업하기 때문에 일탈과 불법 등의 행위가 더욱 심각하다. 취재진은 필수 전문인력을 쓰지 않는 대신 요금을 낮게 부르거나, 상도덕으로 여겨진 상대 업체의 구역에서 일감을 쓸어가는 등의 사례를 5건 확보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자기 명의로 구급차를 운용할 수 없게 해 지입 구급차는 불법 소지가 다분하다.
'지도의사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 지도의사는 상담·구조·응급처치를 돕는 역할로, 현행법상 사설 구급차 업체가 반드시 갖춰야 한다. 그러나 변경 신고는 의무가 아니다. 현재 경기도는 지도의사 명단을 업체가 허가 신청할 때 접수한 서류로 갈음하고 있다. 길면 10년에서 20년이나 지난 오래된 정보인데, 이미 폐업했거나 병원을 옮긴 의사도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김호준 순천향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사설 구급차는 민간에 의해 운영되지만, 공공 서비스와 직결돼있음에도 국가가 다루는 체계는 상당히 허술하다”며 “또 법과 규칙이 딱딱 정해져 있긴 한데 그걸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자세히 보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 사회 문제를 바로 잡기보다 그냥 두는 게 국가적 응급의료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더 낫다고 본 것”이라며 “연예인의 사적 이용이 최근 이슈가 된 것도 너무 운송업, 이동 수단으로 치우친 결과물이다. 국민과 안전, 의료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접근해야 할 텐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각계가 공동으로 논의해야
김 교수의 제언처럼 사설 구급차의 문제는 상당히 난해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취재진은 지난달부터 20곳이 넘는 경기지역 병원과 구급차 업체를 대상으로 해법을 질문한 바 있다. 그 결과 주목해야 할 핵심 과제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중재해야 한다. 이송처치료 인상 할 경우 환자와 병원 측의 부담이 걸리고, 동결하자니 업계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한다. 이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구급차 운영 중단이나 불법 등으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또 정부가 업체의 다툼을 민간영역으로만 여겨 방치할 게 아니라, '공정 경쟁'이 가능하게 사업구역 조정 등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두 번째는 구체화 된 가격 산정 체계다. 시간과 노동력이 더 수반되는 중증환자 이송 등에 대한 별도 가격은 없는 상태다. 정부는 10년 넘게 환자 이송서비스 품질 향상 및 업계 경영보장을 위한 고민을 해왔다. 대표적인 게 건강보험료 적용 방안이다. 하지만 고민에만 그쳤지 완성은 못 했다.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재정 미지원이 복합적으로 작용, 사설 구급차 운영 부실을 불렀다며 제도개선까지 권고했다.
마지막으로 관리·감독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다. 소수의 시·도 공무원이 지역에 산발적으로 있는 구급차를 점검하다 보니 운행·처치기록과 장비 구비, 불법 감시, 민원 처리 등을 모두 떠맡아 실효성이 낮다. 역대 정부마다 보건복지부가 직접 정기 실태조사와 행정처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했으나, 지금까지 반영되지 않았다.
시민사회, 의료계, 업계, 전문가 집단, 국회 등을 포함한 민·관·정 기구가 함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그간 정부는 사설 구급차 논의를 비공개로 다루는 기조를 보였다. 2022년 2월, 8월에도 보건복지부는 구급차 이송거부, 이송처치료를 특정 단체들과만 논의했다.
한 예시로 대중교통 요금은 업계의 경영상황, 수요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인상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국토교통부와 지자체는 버스·지하철·택시 등의 요금 조정안을 놓고 의견청취와 공청회 등 공론 절차를 진행한 뒤 확정하고 있다. 연구용역으로 타당성과 최적의 대안을 찾고 있다.
김호준 교수는 “사설 구급차의 운영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이 미치게 돼 있는데, 사회가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거 같다”며 “소방의 119구급대가 하는 역할과 사설 구급차의 영역을 정돈하고, 논의와 제도개선까지 단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최근 응급환자 이송과 사설 구급차 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작업을 결정하고, 추진 방식과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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