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랑 사랑에 빠져본 적 있어?”
테레즈의 뜬금없는 질문에 남자친구 리처드는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건 들어봤다고 말한다. 그러자 테레즈는 평범한 두 남자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들어봤냐고 묻고 리처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테레즈는 연상의 여인 캐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주연의 영화 '캐롤'(2015)은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멜로드라마 영화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레즈비언 소설 <소금의 값>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한 1952년 미국을 배경으로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영화는 헤인즈 감독의 완벽에 가까운 연출력과 주연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의 환상적인 열연이 돋보여 2015년 최고의 영화로 손꼽혔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지만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해 남성 중심적인 아카데미에서 외면을 받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꽃 핀 두 여성의 사랑
백화점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는 딸 장난감을 사러 온 연상의 여인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첫눈에 끌린다. 테레즈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낀 캐롤은 의도적으로 장갑을 카운터에 두고 가고 테레즈가 그걸 돌려주자 감사 표시로 점심을 대접한다. 캐롤이 테레즈에게 일요일에 자신의 집으로 놀러 오라고 청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꽃 핀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1952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사회병질적 인격장애로 분류함으로써 동성 간의 사랑을 억압하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성인 캐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테레즈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편 딸 양육권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은 테레즈에게 서부 여행을 제안한다.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 테레즈와 캐롤은 여행 도중 더욱 가까워지게 되고 급기야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관계를 담은 테이프가 캐롤의 남편 손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딸에 대한 양육권을 뺏어오는 데 쓰인다. 이에 격분한 캐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테레즈를 두고 홀로 뉴욕으로 돌아온다. 이별을 통보한 편지를 남겨둔 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테레즈가 캐롤에게 전화를 걸지만 캐롤은 전화를 끊어버린다. 캐롤은 딸을 보기 위해 심리치료도 받으며 노력하지만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지자 양육권을 포기하고 접근권만 요구한다. 그리곤 테레즈를 찾아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테레즈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캐롤과 헤어지고 파티에 온 테레즈는 이성애자 틈 속에서 고립감만 느낀다. 테레즈는 다시 캐롤을 찾아가고 테레즈를 본 캐롤은 환한 미소로 응답한다.
만약 20세기 초반의 여성들이 전통적인 결혼 대신 레즈비언이라는 대안을 가질 자유를 충분히 누렸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여성운동이 이루어낸 진보 덕분이었다. 이처럼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 이론 간에는 암묵적인 연결이 존재하며, 퀴어 페미니즘은 이 연결을 보다 명확하게 만든다고 미미 마리누치 교수는 말한다. 여성의 억압과 레즈비언의 억압은 깊숙이 얽혀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여성 해방이 레즈비언의 해방을 견인할 것인가?
/시희(SIHI) 영화에세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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