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민 탐사보도부 차장<br>
▲ 이순민 경제부 차장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영어통용도시'로 선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보도자료를 통해서였다. 인천경제청은 지난 15일 개최한 개청 20주년 기념행사를 알린 보도자료에서 “기념식은 20주년 성과와 비전 발표, 송도영어통용도시 선포식 등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영어통용도시에 관한 언급은 딱 한 줄이었다.

바로 다음 날 취재를 갔다가 “선포문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담당 부서는 이미 수립된 '영어통용도시 조성 계획'도 비공개라고 했다. 견문이 적은 탓인지 기자 생활을 10년째 하면서 선포문이 없는 선포는 본 적이 없다. 한글단체 등의 거듭된 비판을 고려한 조처라고 추측할 뿐이다.

2003년 대한민국 최초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 송도·영종·청라에는 '국제도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국제기구와 다국적 기업, 외국인 학교도 둥지를 틀었다. 지난 20년간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415명에서 8299명으로 늘었다. 괄목할 만한 변화다.

외국어 서비스 제공은 경제자유구역법에서도 규정하는 내용이다. 다만 해마다 수억 원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 '외국인 생활 여건 개선'에 부합하는지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인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송도 거주 외국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배우고 있다”며 “많은 외국인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순간이 영어로 소통 가능한 도시가 아니라 초기 이주 시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는 것을 원한다”고 분석했다. 비공개는 생산적 논의마저 가로막는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경제자유구역 출범 20주년 기념 국제포럼'에서 “한국 도시들은 다른 아시아권보다 열려 있고, 기능적이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도시는 열려 있는데, 행정은 여전히 닫혀 있다.

/이순민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