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쇠뜨기말.

햇볕이 잘 드는 논과 밭에 쇠뜨기 풀이 있다면 물속에는 쇠뜨기말이 산다. 쇠뜨기말이라는 국명은 소가 뜯어먹는 풀을 의미하는 '쇠뜨기' 식물과 물속에서 씨앗이 아닌 포자로 번식하는 조류를 나타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쇠뜨기말은 중심 줄기에 작은 가지들이 바퀴 모양으로 돌려나는 모양 때문에 공식 이름으로 윤조류라 칭하며 차축조류라고도 불린다. 또 다른 비슷한 식물 이름인 쇠뜨기말풀과도 구별해야 한다.

윤조류 쇠뜨기말은 가는 중심 줄기가 수십 센티미터까지 길게 자라고, 줄기의 마디에는 작은 가지가 돌려나는 형태로 언뜻 보면 녹색의 실뭉치처럼 보인다. 작은 가지의 마디에서 암수 배우자낭이 수정하여 포자가 발달하며 갈색의 포자가 성숙하면 검정으로 변한다. 쇠뜨기말은 조류이지만 식물의 구조처럼 돌려나는 가지와 줄기, 뿌리 세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게다가 포자 형태도 속씨식물처럼 포자를 감싸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쇠뜨기말은 육상에 적응한 식물의 진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분류군으로 연구되고 있다. 또한 쇠뜨기말의 줄기세포가 수 센티미터에 달할 정도로 커서 현미경의 낮은 배율로도 녹색 세포질이 일정 방향으로 돌며 움직이는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식물과 비슷한 외형 때문에 종종 쇠뜨기말이 아닌 다른 수생식물을 채집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속의 조류를 떠보면 아쉽게도 쇠뜨기말이 아닌 붕어마름 속의 수생식물이었던 경험이 있다. 게다가 수생식물과 쇠뜨기 말은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고, 대부분은 수생식물이 우점하고 있어서, 소수의 쇠뜨기말 개체를 단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꺼번에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게 되면 쇠뜨기말을 수생식물로 잘못 동정하는 예도 발생한다.

쇠뜨기말은 주변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생물은 아니다. 농약을 적게 친 논바닥에서 자라는 벼의 밑동에서 다른 조류나 수생식물과 혼재되어 자라거나 수로의 흙 위에서 자란다. 쇠뜨기말을 비롯한 대부분의 윤조류는 수질이 깨끗하고 청정한 환경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어서 환경오염과 인위적인 생태 교란 지역에는 서식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윤조류를 희귀생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관리생물로 되어 있다. 인도에서는 벼농사에 방해되는 유해 조류로 인식되어 제초제를 통해 사멸시키는 생물로 삼았던 적도 있다. 앞으로 논과 습지와 같은 서식 환경이 개발되면 이들 서식지를 가지는 생물은 점점 더 희귀생물이 될 것이다.

현재, 국립생물자원관에는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과 서식지 변화를 보여주는 300여만 점의 생물 표본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1965년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서 채집한 쇠뜨기말은 인천 지역에서 채집된 가장 오래된 표본으로 유일한 한 점이 보관되어 있다. 이 표본의 라벨에는 채집장소가 청학동의 논으로만 표기되어 있어 정확한 지점을 알 수는 없지만, 현재는 아파트촌이 되어버린 청학동 일대가 쇠뜨기말의 서식지로 알려진 논 습지일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표본으로 다시 만난 유일한 한 점의 쇠뜨기말을 통해 자연환경의 역사를 반영하는 표본의 가치를 더욱더 귀하게 여겨야 할 시점이다.

▲ 이은영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 이은영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

/이은영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