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2일까지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선거법상 총선 1년 전에는 결정되었어야 하는 선거구가 이번 총선에서도 아직 획정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니 거대정당들의 잇속 챙기기에 신물이 난다. 국민을 주권자가 아니라 선거라는 요식 절차의 들러리쯤으로 치부하는 양 당의 행태에 분통마저 터진다. 지난 3월 선거제를 반드시 개편하겠노라 공언했던 약속은 다 빈말이었던 모양이다.

선거구 획정 기준에 쉽게 합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뻔하다. 인구수가 상한(27만1042명)을 초과하는 선거구를 나누고, 하한(13만5521명)을 밑도는 선거구를 합칠 경우 자기 당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셈을 하느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인구증가가 많은 경기도의 경우 12개 지역구가 상한 지역이고, 1개 지역구가 하한 지역이다.

불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당은 상한 지역을 반드시 분구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없다는 점에 기대어 초읽기에 몰릴 때까지 뻗댈 게 뻔하다. 상대당도 굳이 모험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양 당 모두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의 대의성과 표의 등가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하다.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 당은 어렵게 합의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가볍게 무시하고 '위성정당' 창당으로 유권자들을 우롱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말자며 19년 만에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시민 500명 공론조사도 벌이더니 딱 거기서 멈췄다. 지난 8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2+2 협의체를 구성한 게 마지막이다. 비례대표를 전국 단위로 뽑을 건지, 권역별 득표율과 연동시킬 것인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여야가 극한대립 하는 쟁점이 잇따른 탓도 있겠으나, 선거제도 개편 자체에 양당 모두 미온적인 탓이 크다. 그러니 선거구 획정도 못 하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민 사이에 형성된 지 오래다. 거대 정당들이 귀를 막은 체하더라도 시민과 함께 우리는 정당의 각성을 거듭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