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8일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최초 발표 이래 논란이 확산하자, 다른 4인(이회영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을 제외한 홍 장군의 흉상만 철거 이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국방부는 명분으로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원이었고, '자유시 참변' 관련 의혹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논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다양한 이념과 신념을 가진 인물이 국내외에서 항일투쟁에 헌신했다. 해방 이후 역사 전개를 이전 시기로 투사하여 재단하는 일은 몰역사적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항일 행적이지, 그들의 신념이 아니다.

특히 홍범도 장군처럼 1943년에 작고한 분을, 1950년 이후 전쟁과 결부시키는 것은 유치하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1945년 8월 이전에 순국하신 분들은 이념에 상관없이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보훈 원칙을 이번 기회에 확립해야 한다.

홍 장군을 기리는 일은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가 홍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봉환하려고 시도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해군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다. 첫 서훈에서 2021년 유해 봉환까지 무려 50년이 걸렸다. 다시 말해 반세기에 걸쳐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홍 장군의 행적과 당시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일진일퇴 논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 사회가 다다른 결론이다. 별다른 추가 증거 없이 이를 일거에 뒤집는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인식 퇴행이다.

한국군 창설 당시 면면을 보면 일본육사나 만주군관학교 출신이 수뇌부 대다수를 차지한다. 초대 국방장관인 이범석 장군 등 광복군 출신은 소수다. 애초에 육사 교정에 5인의 흉상이 들어선 것은 이처럼 한국군의 전통이 자랑스럽지 못한 것과 무관치 않다. 이제 와서 '친일 대 빨갱이' 논쟁이 재연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스럽지 않다. 국방부가 홍 장군 흉상 철거를 철회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