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쿼 친라이 타이페이시복싱협회 회장. 사진 속 그가 입고 있는 상의 재킷은 그의 초청으로 오랜만에 대만을 방문한 일본의 아키라 야마네 제12대 일본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이 선물로 준 것이다. 그는 대회 내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옷을 자랑했다.

 

“전 세계 복싱인들은 모두 친구다. 경기 중에는 맞서 싸우지만 링 밖에서는 서로 안아주는 형제와 같다. 복싱을 통해 전 세계의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 의리를 지키며 교류하고 사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2006년부터 무려 17년 동안 대만 타이페이시복싱협회를 이끌고 있는 쿼 친라이(郭枝來/곽지래·사진)은 회장(76세)은 1947년 대만에서 태어나 17세(1964년)에 복싱을 처음 시작했다.

가난때문에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그는 공부로 출세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길을 찾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대만 복싱 대표로 출전하던 당시 최고의 복서 왕지잉을 보고 ‘그를 이기면 유명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글러브를 끼고 열심히 샌드백을 쳤고,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대만 국가대표로 뽑혀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것.

하지만 경기 도중 상대 선수 머리에 부딪히며 눈이 찢어져 피가 많이 흐르는 바람에 기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그는 와신상담 끝에 다시 한 번 대만 복싱 대표로 뽑혀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내부 사정으로 뮌헨까지 왕복 비행기 값과 현지 체류비 등을 확보하지 못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다는 비보였다.

몹시 실망한 그는 그 일로 결국 복싱을 그만두고 ‘돈이나 원 없이 벌어보자’며 사업에 뛰어들었다.

복싱과 담을 쌓고 경제인으로 살며 오랫동안 일에 집중하던 그는 인형과 장난감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부자가 된다.

그러자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그에게 옛 복싱 동료들이 “타이페이시복싱협회장을 맡아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쿼 회장은 2006년 다시 복싱계로 돌아왔다.

‘대만 복싱의 부활과 인재 육성’을 목표로 정한 쿼 회장은 자국 선수들이 국제경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2008년 제1회 타이페이 시티컵 복싱 대회를 창설했다.

이후 이 대회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이 매년 참가해 실력을 겨루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2019년 제12회 대회 이후 코로나19로 2020년부터 3년 동안 대회를 열지 못했고, 4년 만인 올해 제13회 대회를 다시 개최했다. 오랜만에 대회를 열면서 그는 ‘의리’를 중시하던 평소 소신대로 가장 보고 싶고 감사한 친구, 아키라 야마네(84세) 제12대 일본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을 초대했다.

2011년 당시 타이페이 시티컵을 통해 쿼 회장과 인연을 맺은 아키라 야마네 회장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48년만)과 동메달(44년만)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고, 기쁨을 나누고자 당시 쿼 회장을 일본으로 초청해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후 절친한 사이로 지내던 두 사람은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 쿼 회장의 초청으로 드디어 올해 타이페이에서 재회했다.

 

▲ 왼쪽부터 쿼 친라이 회장, 야마네 전 회장, 김원찬 감독.

 

흥미로운 것은 아키라 야마네 회장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인천시청 복싱팀의 김원찬 감독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이다.

야마네 회장은 일본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 시절인 2010년 세계복싱연맹총회에서 김원찬 감독과 처음 만난 뒤 2011년 회장이 되면서 교류전을 치르고자 일본 대표팀을 데리고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1~2회씩 꾸준하게 인천을 찾았다.

이런 사정으로 이번 대회가 열리는 타이페이에서 쿼 회장과 김 감독은 새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일본의 야마네 회장까지 세 사람은 새롭고 뜨거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당시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만 아니었다면 내가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것”이라며 껄껄 웃던 쿼 회장은 “성공한 사업가로서 내가 좋아하던 복싱계로 돌아와 오랫동안 많은 각 나라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어 기쁘다. 이런 교류가 더욱 깊어지고 늘어나길 기대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타이페이=글·사진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