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황금어장…'평화의 배' 다시 띄우자

1953년 7월27일 비무장지대 지정
접경지역 이유로 조업 한계선 설정
민간 선박 항행 허용에도 출입 통제
인천시 '어선안전조업법' 개정 목표

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축제 참가자
“물길 여는 것, 통일 물꼬 트는 일”
▲ 인천 강화군 볼음도와 말도 사이에 설치된 한강하구 중립수역 표지판. /사진제공=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축제 조직위원회
▲ 인천 강화군 볼음도와 말도 사이에 설치된 한강하구 중립수역 표지판. /사진제공=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축제 조직위원회

1.8㎞. 인천 강화군 양사면 해병대 초소에서 한강하구 철책 너머 북한 해창포까지 거리다. 최근 개관한 강화평화전망대 편의시설에는 '남북 1.8 평화센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난 28일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 올라간 강화평화전망대에선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강화군 양사면에 위치한 평화전망대에서 물길 건너 황해북도 개풍군까지는 2.3㎞에 불과하다. 2008년까지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민통선 지역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평화전망대의 공식 명칭은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다. 전망대 건물 앞에는 '제적봉'이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평화전망대가 들어서 있는 봉우리는 1966년 '공산당을 제압한다'는 의미로 제적봉이라고 명명됐다.

정전 70년이 지나도록 한강하구에는 '제적'과 '평화'라는 상반된 단어가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만난 해설사는 “한강하구는 남과 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고 민간 선박은 들어갈 수 있다고 규정됐지만 누구도 가지 않는 잠잠한 바다”라며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 철책이 겹겹이 싸인 인천 강화군 강화읍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 철책이 겹겹이 싸인 인천 강화군 강화읍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철조망으로 겹겹이 싸인 중립수역

평화전망대를 포함한 강화도 북단은 'DMZ(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시작점이다. 2019년 노선 조사로 구체화한 이래 오는 9월 정식 개통을 앞둔 DMZ 평화의 길은 인천 강화군부터 강원 고성군까지 접경지역을 횡단하며 총 524㎞에 이른다.

강화 코스 첫머리에선 '6·25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마주한다. 강화대교에서 북쪽으로 1㎞ 남짓한 거리인 기념공원은 '염하(鹽河)'로 불리는 강화해협을 따라 철조망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분단의 선'이나 마찬가지인 철책길은 월곶돈대에 세워진 정자, 연미정으로 이어진다. 강화해협을 흘러온 물은 연미정 앞에서 또 다른 물길과 합류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황해로 흐르는, 원래 '조강(祖江)'으로 불렸던 물길은 1953년 7월27일 정전과 동시에 '한강하구'가 됐다.

한강하구 중립수역, 혹은 공동이용수역이라는 정체성은 70년 전 정전협정에서 비롯했다. 정전협정문 제1조 5항은 “한강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고 규정했다.

물길의 경계를 나누긴 어렵지만 한강하구는 공식적으로 경기 파주시 만우리부터 인천 강화군 말도까지 수역으로 일컬어진다. 동서로 67㎞ 구간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 전략 수립 연구'를 통해 “중립수역임에도 한강하구 민간 선박의 항행이 이뤄진 건 네 차례에 불과하다”며 “한강하구 평화 정착의 문제는 남북 간 정치·군사·외교적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분석했다.

▲ 지난 26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 남산포항에 어선이 정박해 있다. 남산포는 조업 한계선에 위치한다.
▲ 지난 26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 남산포항에 어선이 정박해 있다. 남산포는 조업 한계선에 위치한다.

▲어장마저 가로막힌 공동이용수역

한강하구 중립수역에서 '평화'는 우연한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6년 여름 홍수로 북에서 떠내려온 황소가 연미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무인도인 유도에 반년간 고립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듬해 1월17일 해병대 고무보트가 한강하구 물살을 갈랐고, 구출된 황소에겐 '평화의 소'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전협정을 통해 민간 선박 항행을 개방한 한강하구는 공동이용수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어로마저 끊겼다. 앞서 지난 26일 '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축제' 조직위원회와 함께 방문한 교동도 남산포항은 적막한 분위기였다. 교동대교에서 남서쪽 방향 직선거리로 4.5㎞ 정도 떨어진 남산포는 어선이 조업할 수 있는 한계선이다.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황금어장'에는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1964년 조업 한계선이 설정됐다. 정전협정 이후 남산포에서 강화도 창후항까지 그어진 선은 어장마저 가로막았다.

인천 군수·구청장협의회는 지난해 10월 어장 확장을 위한 조업 한계선 조정 건의문을 채택해 국방부·해양수산부 등에 전달했다. 인천시 수산과 관계자는 “접경 해역 조업 한계선 조정을 놓고 관계기관과 막바지 협의를 벌이고 있다”며 “하반기 안에 어선안전조업법을 개정해 어장을 확장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어선들도 나아가지 못했던 한강하구 중립수역으로 뱃머리를 향한 시도가 있었다. 2005년 시민 평화운동으로 시작했던 '한강하구 평화의 배'다. 민간 선박 항행을 열어놓은 정전협정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띄워진 평화의 배는 정치적 상황으로 부침을 거듭했지만 2018년 다시 정례 행사로 이어졌다.

▲ 인천 강화평화전망대 앞에 세워져 있는 '제적봉' 비. 정전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강하구에는 '제적'과 '평화'라는 상반된 단어가 공존하고 있다.
▲ 인천 강화평화전망대 앞에 세워져 있는 '제적봉' 비. 정전 70년이 지난 지금도 한강하구에는 '제적'과 '평화'라는 상반된 단어가 공존하고 있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평화의 배는 다시 운항을 멈췄다. '한강하구 중립수역 평화축제'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정세 등으로 배를 띄우지 못해 올해에는 평화축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강화도에서 시작한 평화축제는 지난 27일 북녘땅이 보이는 교동도에서 끝맺었다. 참가자들은 망향대에 올라 '평화선언문'을 낭독했다. “굳게 닫힌 중립수역 한강하구를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만남의 또 다른 시작이자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평화선언문은 한강하구 중립수역이 '평화수역'임을 알리고 있었다.

▲ 조선시대 방어시설인 돈대와 지금의 군 초소가 공존하는 연미정에선 한강하구 너머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다. 군 초소 우측으로 무인도인 유도가 내려다보인다.
▲ 조선시대 방어시설인 돈대와 지금의 군 초소가 공존하는 연미정에선 한강하구 너머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다. 군 초소 우측으로 무인도인 유도가 내려다보인다.

 

 

남북 손잡고 '협력의 공간' 사용해야

2019년 1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은 '한강하구 해도'를 주고받았다. 공동 수로 조사에 착수한 지 두 달여 만이었다. 국방부는 “민간 선박의 한강하구 자유 항행을 시범적으로 허용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남북 대화가 단절되면서 뱃길은 다시 닫혔다.

한강하구의 평화적 이용을 둘러싼 논의가 구체화한 때는 2006년이었다. 당시 골재 채취를 위한 실무 접촉에 공감대를 모은 남북은 이듬해 '10·4 정상 선언'에서 한강하구 공동 이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남북 관계에 따라 한강하구에도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었다. 10여년간 대화가 중단됐던 한강하구 공동 이용은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속도가 붙었다.

그해 '9·19 군사 합의'로 이뤄진 수로 조사는 첫 번째 성과였다. 당시 국방부는 “교류와 접촉이 없었던 한강하구에서 남북이 손을 잡고 '평화와 협력의 공간'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물길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전협정에 근거해 한강하구에서 민간 선박이 항해한 사례가 없진 않았다. 1990년 자유로 건설 과정에서 교동도를 출발한 준설선 등 선박 8척이 한강하구를 거슬러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에 닿았다. 정전협정 이후 최초의 민간 선박 운항이었다.

2005년에는 한강시민공원에 전시됐던 거북선이 한강하구를 거쳐 경남 통영으로 이동되기도 했다. 김국래 전 중국산동대 교수는 '인천학연구'에 발표한 '정전협정 체제의 현황과 한강하구의 지위'(2017) 논문에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신뢰가 축적되면 한강하구를 활용한 남북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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