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그 권력의 허망함

“한국의 젊은 민주주의가 진화했다.” '뉴욕타임스' “한국에 민주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다.” '워싱턴포스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을 때 기사이다. 국정농단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6개월여의 긴 여정을 끝낸 2017년 3월 10일, 마침내 헌법재판관 8명은 만장일치로 주문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은 민주주의 쾌거이자 국민의 승리였다.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밝혔던 1500만 '비폭력 시민운동' 촛불은 이 나라 '권력의 주인은 국민'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것이 바로 '3.5% 법칙'이다. “전체 국민의 3.5%가 비폭력 반정부 시위나 집회를 이어가면 정권이 바뀐다.” 미국 덴버대 정치학 교수 에리카 체노워스(Erica Chenoweth)가 2013년, 20세기 이후 시민 저항 운동을 분석한 결과이다. 3.5% 법칙의 조건은 명료하다.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위나 집회'와 '비폭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전제로 한다. 에리카 교수는 비폭력 방식으로 시위가 진행되면 더 많은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 비폭력 시위가 폭력 시위보다 성공 가능성이 2배 이상 높다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1986년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을 붕괴시킨 피플 파워, 2000년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비폭력 저항운동,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촛불혁명이 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6차 촛불집회 참여 인원을 보면 우리 국민의 3.5%(약 180만 명)가 넘는 190만 명, 232만 명이 참여하였고 결국 탄핵을 이끌어 내었다. 이런 나라에서 다시 탄핵이란 말이 나온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며 인식하는 세상을 모두 '표상(表象)'이라 하였다. '표상'은 눈앞에서 보듯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려보는 일, 심상, 상상, 관념 따위를 말한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보고 그것을 상상하는 일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달 자체를 직접 알지 못한다. 눈으로 달빛을 보고서야 달을 인식한다. 그때 생겨나는 인식이 '달의 표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표상'이란 점이다. 내가 인식하는 달이나 태양은 어디까지나 '나의 표상'이지 '너의 표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표상'을 상상했다. 백성이 주인인,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민주주의가 궤도에 오른 나라였다. 하지만 내가 그린 표상이 이 정권과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완장(腕章)'찬 저 이들 표상과 나의 표상은 완연 다르다. “거친 말이 가야 고운 말이 온다.” 검사들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말이란다. 이 정부 들어 완장 찬 저 이들의 거친 말, 거친 행동은 사뭇 저런 기세다.

이 정부의 완장 찬 이들이 보는 '대한민국의 표상'은 국민들의 보편적 상식과 어긋난다. '바이든'이 '날리면'이 되고, 159명의 집단 주검 앞에서도 책임지는 이 한 사람 없다. 국책 사업이 하루아침에 바뀌고 정부 각 부처는 검사들이 차지하고 앉아 검찰공화국을 조성하며 야당 불신에 언론 장악까지 하려든다. 여기저기 자리만 있으면 낙하산을 투하하고 막말 정치꾼들의 폭력적인 말들이 부유한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완장 찬 이들로 공포분위기가 팽배하다.

윤흥길의 <완장>이 있다. 그릇된 권력을 풍자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건달 종술은 저수지를 감독하는 완장을 차고 마을의 권력자로 행세한다. '완장'은 권력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과도한 권력 집착의 결과는 허무뿐이다. 끝내 종술은 마을에서 쫓겨나고 그가 찬 완장이 물 빠지는 저수지 위에 떠 있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그렇게 권력의 허망함을 그렸다.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이렇게 완장 차고 행하는 권력 행태를 '폭력 사회'로 규정한다.

갈퉁은 1970년대 이후 남북한을 직접 방문하여 평화 통일을 위해 노력한 오슬로대학교 교수이다. 그는 폭력이 인체에 내포된 '자연 폭력', 특정 사람이나 세력이 행위자로 개입하는 '직접 폭력'·법률과 제도들에 의해 가해지는 '구조 폭력'·언론을 통하여 직접 또는 간접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 폭력'·지속 가능성을 약화시켜 다음 세대에게 해를 입히는 '시간 폭력'으로 구분하였다. 이 중, 직접적 폭력, 간접적 폭력과 문화적 폭력을 '폭력의 삼각형'이라 칭하고 이 삼각형이 폭력의 악순환을 반복한다고 보았다.

'직접 폭력'이란 인간의 목표 실현 가능성을 직접 파괴한다. 직접이란 육체적 언어적·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말이다. 이는 명백하게 가시적이고, 개별적이며, 비구조적이다. '구조·문화 폭력'은 특정 집단 혹은 계급이 지원과 시야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인간 욕구의 목표 실현을 제한한다. 즉 '구조 폭력'은 가난, 굶주림, 독재, 사회적 소외, 불공평한 삶의 기회, 불공평한 자원 분배, 불공평한 결정권 따위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문화 폭력'은 상징 혹은 사건과 같은 문화적 측면을 가지고 같은 상징이나 사건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직접, 또는 구조 폭력을 정당화한다.

1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이 '폭력의 삼각형'에 에워싸였다. '폭력의 삼각형'은 어느 각에서나 시작하고 어느 방향으로든 방사한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확대 재생산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만든다. 이 정부 들어 심화된 정쟁, 진실과 거짓을 뒤섞는 보도, 이분법적 사고, 묻지마 충성, 괴담, 궤변, 막말, 빈부 격차 심화, 압수 수색 공포, 시행령 정치, 인권 유린, 색깔론, 공포 정치, 가짜 뉴스… 킬수능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윤석열 특활비, 양평고속도로에 이어 오늘은 물난리로 수십 명이 사망했는데 16명 수행원 대동하고 리투아니아 명품 매장서 쇼핑했다는 보도까지 뜬다. 도덕과 정의, 예의는 사라졌고 민주주의도 실종되었다. 결국 이러한 한국 사회 '폭력의 삼각형'은 입법·사법·행정 3권 분립까지 훼손(예를 들면 양평고속도로는 공정을 깨뜨린 행정부[건설교통부] 책임인데 이를 정치화하여 잘못을 희석시키고 있다.)하고 있다.

이러니 '독재 국가', '전체 국가'라는 말이 나오고 여러 사회단체와 지식인들에 의해 '탄핵'까지 등장케 하였다. 결국 이 모든 게 '완장' 찬 저들이 원하는 '국가의 표상'만 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폭력적 행태를 차단하려면 반드시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행동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막는다는 뜻이다. '3.5%법칙'만 있으면 민주주의를 지켜서다.(야당 당원 수만도 4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완장 찬 이들은 알아야 한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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