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꿈에서 상여를 보면 다음 날 인척 중에 초상이 나곤 해 모골이 송연한 적이 있다. 이웃 한 분이 낚싯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사망했다. 이웃들은 그분이 며칠 전부터 출산하다가 죽은 딸을 꿈속에서 만났다고 말했다며 흉몽을 꾼 와중에 낚싯배 탄 그를 원망했다. 반면에 몽매에도 잊지 못했을 애틋한 그리움이 얼마나 깊었으면 현몽했을까 부모의 입장에서 동병상련하기도 했다.
두 개의 태양이 좇아오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약사 국가고시를 마치자마자 만수동 생가로 돌아와 일주일 밤낮을 잠만 잤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누웠지만, 눈만 감으면 정답을 잘못 쓴 문제들이 줄기에 매달린 감자알처럼 줄줄이 나타났다. 낙방했나 자포자기하던 중 꿈을 꾸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아가는데 날이 더 더워져 하늘을 올려다보니 또 다른 태양이 나를 좇아오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식은땀을 훔쳐 내리고 있을 때 동생이 약사고시 합격 소식을 전화로 알려왔다.
약국을 하던 어느 날, 초췌한 모습의 작은외삼촌이 꿈속에 나타나 춥고 배고프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6.25 전쟁 중 외가 식구들은 우리 집에서 기거하며 나를 키워주었고 작은외삼촌은 인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작은외삼촌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분에 당선되었지만,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내가 약학대학에 다닐 땐 큰외삼촌댁에서 통학했기에 꿈 이야기를 한 후 손수 제물을 마련해 외가에서 작은외삼촌 제사를 올렸다. 그 후 작은외삼촌의 비루한 모습은 꿈속에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작은외삼촌의 보은 덕분이었는지 훗날 외할머니 장례식과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외가를 찾아갔던 추억을 회상한 수필, '동전 세 닢'이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꿈속에서 또 같은 꿈을 꾼 적도 있다. 의약분업 초기엔 처방 약을 구하기 힘들어 여기저기 전화를 거는 것이 일과였기에 처방 약 걱정하는 꿈을 꾸다가 꿈속에서 또 꿈을 꾼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약국을 폐업하고 상근 약사회장이 되었지만, 흰 가운은 마음속에서 벗지 못했다. 내 서가엔 폐업하며 처분하지 못한 약들을 귀중품처럼 진열해 두었다. 그래선지 만수동 생가 대청마루에 약국을 차려 놓고 동네 사람에게 약을 판매하는 꿈을 자주 꾸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충동, 꿈을 꾸는 시점에 처한 환경적 요인, 전날 일어난 일, 그리고 밤에 자면서 경험하는 신체적 자극 등이 취합돼 하나의 꿈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요즘 일확천금을 꿈꾸며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길몽을 핑계로 복권에 투자한 적이 있지만 한 번도 횡재한 적이 없다. 개미의 근성으로 미래를 향한 꿈을 쌓기보다 물욕에 어두워 꿈보다 해몽을 앞세웠기 때문이리라.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시약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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