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친모가 출산한 영아를 잇따라 살해한 뒤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해오다 발각된 엽기적 사건 이후 출생통보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출생통보제는 출산을 담당한 병·의원에서 의무적으로 출생 사실을 행정기관에 신고하도록 해 이른바 '유령영아' 발생을 막자는 제도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기한 이래 여러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수원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 4월에도 정부는 출생통보제를 담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출생통보제에 대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해 왔다. 병원 출생 기록은 건강심사평가원에 모두 넘어가게 되므로, 행정적 절차를 따라 처리할 수도 있는데, 의료기관에 의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의료계의 항변이었다. 또한, 병원이 출생통보 의무를 질 경우 출산을 기피하는 산모들이 병원 밖에서 분만을 시도하다가 건강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주장했다. 출생통보제가 아동학대 사각지대를 줄이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출생통보제가 진즉에 시행되었더라면 수원 사건 같은 비극을 막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측면에서 제도의 도입에 찬성한다. 시흥시민들이 2021년 아동의 출생 등록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만6405명 연명으로 발의했던 관련 조례안이 법제처 해석으로 인해 무산된 점도 매우 아쉽다. 그러나 출생통보제 도입만으로 영아의 비극을 막을 수 없다는 주장도 상당히 일리가 있기 때문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빈곤으로 인한 양육 곤란 등 '유령영아'가 발생하는 사유는 다양하므로 영아와 산모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도입하지 않는 한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수원 사건 이후 수사에 나선 경기남부경찰청 영아 관련 사건만 하더라도 26일 현재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아기가 4명에 이른다. 정부도, 국회도, 의료계도 진정으로 영아살해와 아동학대를 막고 싶다면 머리를 맞대고 섬세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출생통보제만으로는 제2, 제3의 수원 사건을 막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