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자치행정부장.
▲ 조혁신 논설실장.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두고 여권 정치인들이 대통령실의 스피커를 자청하고 있다. 정치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와 이익을 조정해 최대 공공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통합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큰 틀의 정치노선에서 대통령과 여권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겠으나 사안별로 다른 의견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TV 수신료 분리징수 건을 대하는 여권의 태도를 보면 공공 이익은 간데없고 정치적인 헤게모니 장악 수단으로만 삼는 듯하다.

얼마 전 지역 여권 유력 정치인을 만나 환담을 한 적이 있었다. 통상 언론인이 정치인에게 현안에 관한 질문을 하기 마련인데, 황당하게도 이날 만남에서는 거꾸로 그 정치인으로부터 “TV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 정치인의 생각을 지면에 옮길 필요는 있을 듯해 요지만 전한다.

TV 수신료 분리징수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KBS가 정치적으로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국민의 납부 선택권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라고 한다. 이 밖에도 KBS가 인천에 지역방송국도 두지 않는 등 인천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유 자체만 놓고 본다면 모두 타당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공정성, 납부 선택권, 인천 KBS방송국 부재가 수신료 분리징수와 전혀 별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성이 문제라면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해결하면 된다. 인천에 KBS 지역방송국이 부재해서 문제가 된다면 지역 정치권과 지역 사회가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해결할 문제이다. 납부 선택권은 굳이 토를 달 필요도 없는 사안이다. 방송법에서는 텔레비전 수상기를 소지한 자에게 방송수신료를 납부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관련 규정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분리징수가 수신료를 안 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현재 수신료 징수는 1994년부터 한국전력에 위탁되어 전기료 고지서에 통합 납부하는 방식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국가유공자, 시청각 장애인 등을 제외하곤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으면 모두 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로 보면 애초에 정부 여당의 수신료 분리징수의 목적은 수신료를 볼모로 KBS를 압박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해 정권에 순치시키려는데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지난 23일 법원이 한상혁 전 방통위 위원장의 면직 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정부, 즉 방통위가 추진하는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KBS가 헌법재판소에 낸 방송법 시행령 개정 절차 진행정지 가처분 신청만 장애 요인일 뿐이다. 방통위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16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 입법 예고하고 의견을 수렴했다. 앞으로 남은 절차는 방통위 전체회의 의결과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국무회의 심의 및 의결이 남는다.

현재 KBS 전체 재원에서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수신료가 전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이다. 즉 수신료 징수를 통해 방송의 상업화를 막고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영방송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수신료 징수가 필수적이다. 이런 이유로 영국 BBC, 프랑스 텔레비전, 독일 ZDF 등 세계 주요 공영방송사들은 지난 22일 KBS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를 보면 주인공 덴고가 NHK 수신료 징수원으로부터 수신료 납부 독촉을 받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 덴고와 징수원은 수신료를 두고 매번 숨바꼭질을 벌이는데, 덴고는 부친이 NHK 수신료 징수원으로 일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덴고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수신료 징수원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곧 벌어질 풍경이다.

/조혁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