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많아서 이사 가기가 힘들다. 이 짐을 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까운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져가라고. 단 내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빼고. A가 와서 소파를 가지고 갔다.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B가 와서 티브이를 가지고 갔다. 이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이다. C가 와서 냉장고를 짊어지고 갔다. 저 또한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D가 와서 책상과 의자와 책꽂이와 그리고 산더미 같은 책을 트럭에 싣고 갔다. 아까워해봤자 더는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남아 있는 물건이 하루하루 줄어들수록 나의 고민도 하루하루 줄어들고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사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이삿날 친구들이 나의 이사를 돕겠다고 찾아왔다. 짐이라곤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으쌰으쌰 힘을 모아서 새집으로 나를 옮겨놨다. 나는 얌전히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가서 누워 있다.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이 또한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을까?

 

▶집은 한 인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다. 집에는 온갖 사물들이 있다. 그 사물들은 단순히 물건이 아니라 개인적 체험과 시간이 묻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집은 육체의 일부와도 같다. 그러니까 오랜 시간 치러낸 여러 겹의 삶이 숨 쉬고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그 공간을, 그 삶을, 그 육체를 시인은 이제 바꾸려고 한다. 이사 가려 한다. 그러니까 이사 가는 일은 내 삶에 변화를 주는 행위이자, 육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물건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짐이 많아서 이사 가기 힘들단다. 그래서 꼭 필요한 물건들만 빼고 나머지 물건들을 정리한다. “남아 있는 물건이 하루하루 줄어들수록 나의 고민도 하루하루 줄어들고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을 때 남아 있는 짐은 '나 하나뿐'이다. 집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토대를 마련하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고, 빈 공간을 만들어서 하나씩 채워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것저것 모아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둘 버려서 하나를 만든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집이란 아직도 지하실 입구에 지어진 일종의 현관에 지나지 않는다.”(<월던>)라고 하였다. 심리학적으로는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의미겠으나 '지하실 입구에 지어진 현관', 그러니까 '죽음'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집으로 표상한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시 역시 그렇다. 나와 짐과 집이 하나가 되는 순간, 즉 '죽음'의 순간에 대한 사색의 기록이다. 삶보다 죽음 쪽에 가까이 가 있는 자들은 하나둘 버린다. 버림으로써 완성한다. 세상의 온갖 기쁨과 영예도, 수많은 상처와 고통도 '죽음'의 순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시인은 '이사' 가는 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친구들이 “으쌰으쌰 힘을 모아 새집으로 나를 옮”기고 그곳에서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하는 생각을 따라 해 본다. “이 또한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었을까?”

/강동우 문학평론가



관련기사
[시, 아침을 읽다] 계절병-안현미 고독은 나무처럼 자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고 끝끝내 삶은 죽음입니다 거대한 고래처럼 거대한 고독이 두려운 나머지 시간을 밀거래하는 이 도시에서 서로가 서로의 휴일이 되어주는 게 유일한 사랑입니다 병인을 찾을 수 없는 나의 우울과 당신의 골다공증 사이를 자객처럼 왔다 가는 계절 그 그림자를 물고 북반구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의 날개 같은 달력 한장 가없는 당신 나의 엄마들 왜 모든 짐승들에겐 엄마라는 구멍이 필요한지, 시간조차 그 구멍으로부터 발원하는 발원수 같은 건 아니겠는지 시도 때도 모르고 철없이 핀 꽃처럼 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