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논설실장
▲ 조혁신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간호법 거부권 행사는 이전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 때와는 달리 윤석열 정부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시시때때로 거대 야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해왔는데, 이번에는 도리어 정부와 여당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간호법 제정은 대선 당시 공약이잖는가?

윤 대통령은 간호법을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 등의 편을 들어 의료체계의 한 축인 간호사들의 의견은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사회 갈등을 중재하고 통합해야 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대통령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직역간의 과도한 갈등”을 들었으나 간호법을 의료체계 붕괴법으로 선전하며 갈등을 부추겨온 당사자는 정부와 여당이다.

간호법은 '의사의 진료 영역을 침범하고 단독 개원을 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달리 간호 인력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간호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령화 사회에서 거동불편자와 노인에 대한 간호돌봄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사의 지시 없이는 노인들에게 기본적인 간호돌봄 서비스가 제한된다. 더불어 간호법은 기본적인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의료현장에서 간호사의 권리를 보호해 간호사들의 이탈을 막고 숙련된 간호사를 양성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는 160여년 전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나이팅게일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나이팅게일은 백의 천사로만 알려졌는데 사실 간호와 보건 분야 전문 행정가이기도 했다. 그는 1854년 크림전쟁에 참전해 전쟁터에서 다쳐 고통받거나 죽어가는 군인들의 참상을 목격했다. 군인들이 전투에서 생긴 부상이 아니라 처참한 위생 문제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야전병원과 치료소 환경을 개선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1856년 빅토리아 여왕을 찾아가 병원개혁안을 건의했고 간호사 직제 확립 등에 기여했다. 간호체계가 확립되는 데 나이팅게일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지만, 나이팅게일의 제안과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 청구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빅토리아 여왕과 영국 정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60여년 전 나이팅게일이 누구도 가기 꺼린 전쟁터에 직접 찾아가 부상 병사들을 돌본 것처럼 의사들이 가지 못하는 곳, 돌봄이 필요한 현장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간호법이란 사실을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깊이 새겨야 한다.

한편 나이팅게일은 치료소에서 죽은 군인들의 사망 원인을 장미 그림으로 그려 런던(영국 정부)으로 보냈다고 한다. 장미 한 송이의 열두 꽃잎이 1년 열두 달을 나타내고, 꽃잎의 크기가 곧 그달의 사망자수를 보여준다. 빨간색 꽃잎은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 수, 파란색 꽃잎은 부상과 관계없이 위생 불량, 전염병,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나타냈다. 간호사들은 윤 대통령에게 장미꽃을 보내고 싶은 심정일 듯싶다.

/조혁신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