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젊은 시절 한때 실존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다. 그때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프란츠 카프카가 독일인인 줄 알았는데 체코인이었던 사실에 놀랐고 책이 너무 어려워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머리 좋지 않은 필자 같은 경우는 한 문장을 두세 차례 읽어야 “아하 그 말이구나”라고 알 수 있을 만큼 문장이 난해했다. 독일 소설의 자체가 쉽게 읽히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소설 속 주인공의 처지를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 내용을 대충 정리해 보면 상점 외판원인 '그레고르 잠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 출근하지 않는 그를 데리러 온 직장 상사와 가족들은 그를 보고 놀랐다. 이후 그레고르는 방에 갇혀 지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여동생이 먹을 것을 주기 위해 그레고르의 방을 방문할 뿐, 그전에 다정했던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생계에 어려움을 느낀 가족들이 하숙을 시작했지만,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고 하숙인들이 도망갔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원망하게 됐다. 한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집에서는 없어서는 안됐던 그레고르는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됐다. 날이 갈수록 무력감에 빠져 불면으로 고통받던 그레고르는 화가 난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상처를 입은 채 방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다. 그레고르가 죽은 뒤에 가족들은 평온을 되찾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 본 카프카의 변신에 나온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나 자신이 언제든지 벌레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같은 상황에 부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세대가 지나가도 이 소설을 읽게 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프란츠 카프카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내년 총선이 1년이 남지 않아서 그런지, 그레고르와 정치인이 필자의 복잡한 머릿속에서 교차해서 지나간다

지역 각종 행사에 정치인이 몰리기 시작했고 '의정 보고회' 제목으로 전화 문자 알림이 쉼 없이 울린다. 최근 들어 도로변에 정치 현수막이 지나치다 할 만큼 내걸렸다. 이쯤 되면 유권자들은 달력을 보지도 않고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선거란 정치인에게 있어 생사를 가늠하는 잣대와 같다. 여의도 정가에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떠돈다. 이런 말도 있다. “정치인이 선거에 떨어지면 그다음 선거 때까지 좀비로 산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유권자의 판단이 이뤄지는 선거는 정치인에게 있어 두려움의 행사이면서 통과 의례다. 선거 결과는 여의도 국회 배지를 달고 승승장구하던 정치인을 하루아침에 벌레 모습의 그레고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유권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서민들은 생활고를 하소연하고, 국내외로 무엇하나 제대로 됐다는 소식은 없다. 온통 뒤죽박죽이다.

정치 세계에는 여야가 없고 아군 적군도 없다. 그냥 그들만의 쌈박질이다. 이젠 웬만한 막말은 막말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유권자는 선거에 나선 후보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잘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덜 나쁜 놈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암울하다.

선거에 앞서 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한번 읽어보고 두려움을 가지라고.

/김기원 경기본사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