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야당 주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이 국회 의결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7년 만이다. 야당은 지난해 가을 쌀값이 폭락하면서 쌀 농가 순소득이 37%나 줄어든 데 대한 대응책으로 개정안 입법을 추진해왔다. 윤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쉽게 가려지기 어렵다. 농민의 입장을 우선시하면, 쌀값 폭락 상황에서 정부 수매 등 보호 대책이 절실하고, 경제 전반의 관점으로 보면, 쌀 농가만 보호하는 제도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각기 다른 견해들이 충분한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농민 보호와 국민 경제의 균형을 어느 선에서 확보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그게 정상적인 정치다.

하지만 지난 가을 쌀값 대폭락 이후 처음부터 여와 야, 야당과 정부 사이에 날이 선 말의 공방만 오갔을 뿐이다. 치킨 게임 하듯 서로 기세만 과시하려 들었지 실질적인 대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는 야당 개정안에 대해 초기부터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을 찍기 바빴을 뿐 실질적인 쌀값 폭락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쌀값이 크게 요동치더라도 정부 수매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 농가의 위기에 대처해 나갈 것인지 제시했어야 한다.

지난달 23일 야당 주도로 처리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최상은 물론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진즉에 나름의 대책을 제시했더라면 여와 야, 야당과 정부가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맞부딪치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인 6일에야 관련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산발적으로 밝혔던 내용의 재탕 삼탕 맹탕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성난 농심을 가운데 두고, 대립의 정치에 따르는 반사 이익을 챙기려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