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자유공원은 인천 차이나타운 뒤편 응봉산 일대에 자리를 잡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다. 서울의 탑골공원보다 9년 앞서 1888년 세워졌다. 인천항 개항(1883년) 후 주로 외국인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구한말 개항의 물결이 매우 높았던 때였다. 지금도 인천항과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경치가 빼어난 이 곳에 외국인들은 별장을 짓는 등 이국적인 공간으로 변모했다고 알려진다.

자유공원이란 이름은 여러 차례 변천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외국인 거류민단에서 관리·운영하며 '각국공원'으로, 그 뒤 일본이 세력을 키운 뒤 1914년 각국 거류지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을 인천부로 옮기면서는 '서공원'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 후엔 '만국공원'으로, 인천상륙작전 지휘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운 후부터는 '자유공원'으로 개칭됐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듯한 인천의 명소다. 자유공원은 도심에 있는 데도 울창한 숲과 산책로 등을 자랑하며 시민들의 발길을 끈다.

자유공원엔 1957년 9월15일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건립됐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크게 바꿔놓은 장군을 추모하자는 뜻에서다. 국민들의 성금을 기반으로 했다. 인민군을 격퇴하고 인천 탈환의 상징으로 한·미 연합군이 태극기를 꽂은 자리를 잊지 말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맥아더 동상을 인천상륙작전 기념관(연수구 옥련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아직도 동상은 자유공원에 우뚝 서 있다.

그런데 맥아더 장군 동상 하부에 상륙작전을 형상화한 부조 작품을 놓고 때늦은 논쟁이 가열된다. 맥아더와 병사 등이 오르는 장면을 표현하고 있는데, 인천상륙작전이 아닌 1944년 필리핀 레이테섬 탈환 작전 때 모습으로 확인되면서서다. 철거하거나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인천시와 국가보훈처의 갈등은 표면으로 떠오른 상태다. 시는 국가보훈처에서 만든 현충시설인 만큼, 소유주인 정부가 정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시 국무회의 의결로 동상 건립을 추진했고, 국민 성금으로 정부에서 세운 만큼, 소유권이 정부에 있다고 한다. 반면 국가보훈처는 동상 연혁·소유 주체·법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시에서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곳에 '필리핀 모습'이 웬 말인가? 60년이 훨씬 지나 난데없이 밝혀낸 것도 모자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상대방에게 소유권 싸움을 벌이는 일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제라도 누가 됐든 하루빨리 철거해 인천상륙작전을 담은 장면으로 대체해야 마땅하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