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저녁노을이 종소리로 울릴 때/나는 비로소 땀이 노동이 되고/눈물이 사랑이 되는 비밀을 알았습니다./지금 내 피가 생명의 노을이 되어 땅 끝에 번지면/낯선 사람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가족이 됩니다./빛과 어둠이 어울려 반음계 높아진 노을종이 울립니다.”

고(故) 이어령 박사가 '정서진 노을 종소리'란 제목으로 쓴 시다.

아울러 정호승 시인은 바다와 맞닿은 곳에 서 있는 시비에서 '정서진'을 이렇게 노래한다.

“벗이여/눈물을 그치고 정서진으로 오라/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다정히/노을 지는 정서진의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라/해넘이가 없이 어찌 해돋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해가 지지 않고 어찌 별들이 빛날 수 있겠는가”

하나 같이 인천 서구의 정서진(正西津)을 예찬한 글이다.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正東津)의 대칭 개념인 정서진은 서울 광화문을 기준으로 국토의 정서쪽에 위치한 바닷가 나루터다. 그러니까 광화문 서쪽 끝으로 뭍이 끝나는 지점을 말한다. 정동진의 일출이 희망과 새로운 출발 등을 뜻한다면, 정서진의 일몰은 낭만·그리움·회상 등을 의미한다. 매년 12월31일엔 정서진에서 한해의 마지막 해를 마무리하는 해넘이 행사가 열린다.

정동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억 만들기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반면 정서진은 그다지 유명세를 얻지 못하다가, 서구에서 12년쯤 전부터 대내외에 본격적으로 알리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서구는 경인아라뱃길 개장과 연계해 2011년부터 정서진을 착안·발굴했다. 정서진에 가면 갑문·여객선터미널·풍력발전기·전망대·박물관 등이 찾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근 인천국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도 보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게 한다.

서구가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1주기를 맞아 '정서진 노을 종소리' 시비를 건립했다. 구는 지난달 28일 이 전 장관의 유가족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정서진 노을 종소리 시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 전 장관은 정서진과는 이 곳의 대표 조형물인 '노을종'의 이름을 지으며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12년 서구가 가로 21.1m, 높이 13.5m 규모로 종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을 때, 의뢰를 받고 '모순과 대립을 감싸고 아우른다'는 뜻을 담아 노을종으로 작명했다.

익숙한 공간의 연장선상에서 낙조는 아련한 기억을 소환한다. 지난 날을 반추하며 희망의 날을 꿈꾸기도 한다. 노을종은 서해안의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낸 형태를 띠고 있다. 낙조가 번질 때면 노을종 사이로 해가 걸린다.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기보다는 삶의 새출발을 다짐하는 정서진으로 남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