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묵은 한을 풀었어. 무당이라고 은연중 괄시받고, 자식출가시킬 때 가슴아팠던 일은 이루 말로 다 못해. 그런데 지난해 12월 대통령이 전국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을 모두 점심에 초청했어. 난생 처음 대통령과 악수했지. 옛날로 치면 임금을 배알한거야. 돌아가신 아버님 말씀이 항상 가슴을 옥죄었는데 비로소 거기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보유자 이선비여사(65ㆍ인천시 동구 화수1동ㆍ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보존회장ㆍ☎772-4331). 평산 인근 해주에서 태어난 여사는 자라며 아버지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다. 「여자인 네 이마에 큰 대자 모양이 있으니 무당 아니면 과부가 된다. 무당이 되면 가문을 망칠 것이요, 과부가 되면 문턱을 베고 죽을 것이다.」 크면서 그 말 뜻을 알게됐다. 무서운 예언이었다. 결국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당이 되었다. 그런데 대통령까지 만나 가문의 명예를 높였으니 아버님 예언이 빗나간 것 아닌가.

 결혼해 인천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입병이 나고 식중독 증세도 나타나고 폐병이 악화(4기)되는 등 몸 한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듬해(28세) 정월에 누군가 점을 보러가자고 했다. 점을 보던 할머니는 내일모레면 신이 부를텐데 왜왔냐며 법당에 절을 하라고 했다. 세번 절을 하니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버지 예언이 있었다지만 스스로 무당이 되리라고 생각도 못해본 여사는 놀랍기만 했다. 그 며칠뒤 유씨라는 만신을 찾아갔는데 신딸이 왔다며 반겼고 여사는 그 신어머니로부터 신내림을 받아 만신이 되었다. 마치 꿈을 꾼 것같았다. 그때부터 점을 보고 굿을 하기 시작했는데 영묘한 그의 신기가 입으로 입으로 퍼져 이름이 알려졌다.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은 여사가 35년여전부터 강화 교동에 살던 만신 장보배씨(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91년 작고)를 찾아다니며 물려받았다. 평소 신어머니로부터 장씨는 여사의 고향 해주와 가까운 평산출생으로 소놀음굿을 하니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놀음굿은 농사 풍년, 장사 번창, 자손 번영, 마을 화합을 기원하며 행해지던 경사(慶事)굿의 하나. 굿은 신청울림을 시작으로 마당굿까지 15거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15거리중 여섯번째 거리가 소놀음굿이다. 칠성님, 선녀, 악사, 신농씨, 마부, 약대(소)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제석(옥황상제 명을 받은 이)이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국을 개국한 내력을 구수한 타령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여사는 굿을 모두 관장하면서 마부역도 하고, 잡귀를 쫓는다는 뜻에서 쌍작두를 타고 그네뛰기도 벌인다. 쌍작두 그네타기를 한 만신은 전국에서 여사가 처음이다. 이 두가지 기ㆍ예능으로 92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굿에 나오는 타령을 다 할라치면 인천서 청량리까지 가도록 해도 못해.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 길고 어려운 것을 장보배씨에게서 배울때 아무 어려움없이 다 외우고 술술 해냈으니. 글자는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외웠냐며 천재라고 다들 놀래.』 그가 이끌고 있는 소놀음굿보존회에는 신이 내린 만신, 전통문화를 배우려는 이들 등 이수자ㆍ전수자ㆍ회원이 30여명 돼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대다수 무형문화재보다는 나은 형편이다. 여사는 오는 3월 동구 화도진공원에서 굿이 펼쳐지니 꼭 와서 인간세상에 주는 교훈이 담긴 타령을 들어보라고 권했다.

〈손미경기자〉 mgson@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