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어릴 적 여름방학을 맞아 덕적도(德積島)에 자리한 서포리해수욕장을 가는 일은 설렘 그 자체였다. 인천 앞바다 섬들엔 나름대로 수려한 해변이 있어 풍광을 뽐내긴 했어도, 인천시민들은 서포리해수욕장 피서지를 으뜸으로 쳤다. 1970년대 당시 배를 타고 4시간여 끝에 만나는 서포리는 그만큼 고운 모래사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름철엔 그야말로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장사진을 이뤘다. 그 땐 해수욕장이 한여름 더위를 식힐 인기만점의 장소였던 시절이었다.

덕적도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에서 인천광역시(옹진군)로 통합됐다. 지금은 인천여객터미널에서 고속선으로 약 1시간이면 도착하는 비교적 가까운 섬으로 분류된다. 덕적군도(德積群島)에 속한 섬 중에서 가장 크다.

옛 문헌을 보면, 덕적도의 경우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할 때 백성들의 임시 피난처로 쓰였다. 고려 말 조선 초엔 왜구들이 종종 섬에 나타났다고 한다. 16∼17세기 왜란과 호란 등 잇단 외세 침입을 받자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평가됐다. 그래서 이 섬엔 경기 지역 수군진(水軍鎭) 중 하나인 덕적진이 들어섰다. 해상 교통·활동의 중요 거점으로 여겨졌다는 뜻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최근 이처럼 역사·문화적 가치를 풍부하게 가진 덕적도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학술보고서와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눈길을 끈다. 덕적도가 우리나라 고대 연안항로를 잇는 서해안의 주요 뱃길로, 해양 문화와 고대 뱃길 복원에 긴요한 지역임을 공감하고 2021년 조사에 착수했다는 게 제작 배경 설명이다.

학술보고서는 덕적진 설치, 중국 배인 당선(唐船) 침입, 왜구 출몰, 인천상륙작전 교두보 확보를 위한 탈환 작전 등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 등을 담았다. 덕적도의 지리적 환경, 고고·역사유적, 사회시설과 생업 활동, 전통생활·문화, 전통 신앙과 종교 활동 등을 조사한 내용도 포함됐다. 여기에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미국인 사제 최분도(본명 베네딕트 즈웨버 1932∼2001) 신부가 덕적도에 병원을 열고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봤던 일화도 실었다. 다큐멘터리는 현지 촬영 영상, 덕적도 주민의 이야기, 전문가 인터뷰 등을 25분 분량으로 생생하게 풀어냈다.

이렇게 문화와 역사를 지켜온 섬 주민들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일은 큰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도 뭍과 동떨어져 온갖 고초를 겪으며 지내는 섬 사람들의 얘기를 더 많이 만들었으면 싶다. 이 학술보고서를 계기로 시민들이 덕적도 해양 문화유산 자원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하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