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민족 대이동이라는 연례행사를 치렀다. 매년 그렇듯이, 민족 명절인 추석을 맞은 대도시의 풍경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대도시의 거리에서 이방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평상시 바쁘고 번잡한 대도시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던 이방인들의 존재를, 추석을 맞아 한산한 거리에서 새삼스레 느끼며 묘한 기분을 맛본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서 힘들고 피곤하게 이 도시를 지탱해주는 사람들의 쓸쓸한 그림자를 본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한국에 와서, 이제는 우리가 마다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가 추석의 휑한 도시 거리에서 무겁게 다가온다. 과연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각종 언론에 보도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우리들 마음속 뿌리깊이 박힌 천민 자본주의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당혹스럽고 부끄럽다.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돈 조금 벌었다고 우쭐대는 졸부의 모습, 바로 그대로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언론을 장식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냉대, 인권침해, 그리고 정부 조직에 의한 감시와 처벌 등 수많은 사례들을 보며, 도대체 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하는 자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바로 불과 얼마 전 우리의 자화상이다. 외국에서 온갖 수모와 차별을 감수하며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던, 바로 어제의 우리 모습이 바로 지금 현재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활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마치 그동안 우리가 선진국에서 당한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이것은 결단코 고쳐야할 모습이다. 우리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인권도 소중한 것이다. 피부색이 틀리다고, 우리보다 조금 못산다고 인권이 무시되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천박한 졸부 근성에 아울러, 사대주의까지 겹쳐있는 것을 보면 한심할 지경이다. 똑같은 외국인 노동자임이 분명한데, 영어권 국가에서 온 흰 얼굴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흰 얼굴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았던가? 사정이 이러니,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후진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동포들까지 차별대우를 받는 세상이니 문제가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선진사회란 단순히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선진화되어야 진정한 선진사회이다. 의식의 선진화를 위한 작은 실천의 하나가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를 고치는 것이다. 단순히 제도적 문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천박한 졸부근성부터 내쫓고, 나의 인권이 중요하듯이 남의 인권-곧 피부색이 틀리고 국적이 틀린 사람의 인권-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우리 모두에게 자리잡을 때,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선진사회라고 자부할 수 있다.
 특히 인천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인천지역의 언론, 시민단체, 그리고 시민 모두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천은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도시이다.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한다고 국제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출신국과 상관없이 외국인이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 도시가 진정한 국제도시이다. 그렇다면 인천시에서, 그리고 인천시민 모두가 적극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를 개선하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