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일시·장소 특정 안돼…"피고인 방어권 행사 어려워"

 

▲ [연합뉴스TV 제공]

보이스피싱처럼 범죄 일시나 장소를 특정하기 까다로운 경우라도 검찰이 지나치게 개괄적으로 써낸 공소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63)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11월 4∼15일 중 본인의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성명 불상자에게 건네준 혐의를 받았다. 공소사실에서 A씨의 범죄 혐의는 한 문장으로 표현됐다.

1심과 2심은 A씨가 건넨 카드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활용됐다며 징역형을 선고했다.

A씨 측은 "검찰이 범행 일시와 장소, 체크카드 양도 상대방과 양도 방법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조직 형태로 은밀히 이뤄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특성상 범행 일시, 장소, 가담자 등을 특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이 이런 요소를 특정하지 못했더라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공소사실의 기재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특정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했다.

검찰이 지목한 범행 일시가 12일에 걸쳐 있는 등 사실관계가 너무 두루뭉술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를 적용한 방식도 문제 삼았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접근매체(카드 등)의 교부'를 무조건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양도·대여·전달 등 교부 방식을 구체적으로 구분해 범죄를 가린다. 그런데 공소장에는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줬다"고만 적혀있을 뿐이어서 A씨가 방어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대법원은 "범죄 일시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편의를 위해 지나치게 개괄적으로 표시함으로써 사실상 피고인 방어권 행사에 지장을 가져오는 경우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기재가 있는 공소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도현 기자 yeasma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