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도 친구는 영원하다’.
 사람과 술은 오래 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술을 오래 묵힐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것처럼, 사람도 오래 사귈수록 상대방을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만큼 의지하기도 좋기 때문일 것이다.
 인천의 ‘오비’(OB·올드보이) 모임들은 대부분 수십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대부분이 동창생 모임이지만 그렇지 않으면서도 지역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맥을 이어오는 경우도 있다.
 인천의 대표적인 ‘오비’클럽을 찾아가 본다.
 ▲인천여고 동창회
 지난 12일 낮 12시 인천시 중구 인현동 한 음식점. 경쾌한 웃음이 홀을 울린다. 여성 6명이 여고생들처럼 깔깔거리며 얘기꽃을 피운다.
 자리를 함께 한 이들은 장보원씨(88·전 연세대 음대 교수)를 필두로 홍성숙, 김종열, 김춘자, 김순자, 송재숙씨 등 모두 70 중반의 고령자. 일제치하 어려운 시기에 일본인 학생들과 실력을 겨루고, 민족적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며 똘똘 뭉쳤던 해방전후의 ‘인천여고’ 동창생들이다. 졸업기수가 18∼34회니 지금의 인천여고 후배들에게는 그야말로 까마득한 대선배.
 매월 둘째 목요일이면 이들은 서울, 수원, 심지어 충북 수안보에서까지 먼길 마다않고 달려온다. 손에는 선후배에게 줄 먹을거리 보따리가 들려있고, 마음에는 수십년지기를 볼 즐거움에 흥분을 품고.
 “내가 참여하기 시작한 지가 24년째니 첫 모임은 30년도 훨씬 더 넘었어요. 모이는 사람이 많을 때는 30명이 넘었는데, 세상을 떠나거나 이민을 가는 바람에 이렇게 10명 안쪽이 됐지. 분명하고 꼼꼼하시지만, 한없이 따뜻한 장 선배를 중심으로 즐거움을 나눈 그 시절을 무엇으로 바꾸겠어요.” 34회 김순자씨의 말이다.
 각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학생 소수만이 입학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인천여고. 따라서 대부분 교수로, 의상실 주인으로, 시인으로, 현모양처로 제각기 값진 삶을 꾸려왔다. 그러면서도 선배님은 무조건 존경하고, 후배는 사랑으로 감싸는 돈독함으로 이 모임을 견고히 지켜왔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의 삶을 얘기하고, 앞날을 짚어보는 다양한 화제속에서 다시금 생활의 활력을 얻곤 했다는 이들. 10월 둘째 목요일을 기약하며 이들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월미친목회
 매월 둘째 월요일이면 인천시 중구 신생동 초원다방엔 은빛 웃음이 만발한다. 인천지역을 사랑하고 아끼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월미친목회’ 회원들의 회합자리다.
 “요즘 건강은 어때.” “아 맨날 그렇지 뭐, 자네는 다리가 시리다더니 지금은 괜찮나?”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월미친목회’ 회원들의 얘깃거리는 지역현안에 맞춰져 있었지만 지금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온통 건강얘기 뿐이다. 하긴 회원가운데 고인이 된 사람이 남은 회원보다 많고 보면 화제가 건강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회원 평균 연령이 70대 중반이니까요. 허, 허, 허” 명예회장 김재택씨(81)는 언제 이렇듯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월미친목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68년 9월. 당시 동양통신 인천지사장이었던 김재택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인천친구들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사업가, 의사, 회사원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월미친목회’는 지역사람들간 친목을 위해 만들었지만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은 지양하고 나무심기, 수재민돕기 등 지역사회 이웃이야기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도 이 모임은 각종 지역봉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모여야지요.” 총무 안항남씨(74)는 점점 나이가 들어 가겠지만 친구들을 못 보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라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경 동우회
 ‘재경 동우회’는 서울에 살고 있는 인천 동산고등학교 6회 졸업생 모임이다. ‘재경 동우회’의 모임은 석달에 한차례. 처음 한달에 한번씩 모였지만 송년회는 물론 경조사에서도 얼굴을 보게 되면서 “너무 자주 보는 게 아니냐”는 반발(?) 의견이 나와 7년전부터는 석달에 한번씩만 얼굴을 본다.
 “그때만 해도 네가 나보다 훨씬 작았는데 너 정말 많이 컸다.”
 “야 웃기지 마라. 3㎝ 큰 것도 큰 거냐?”
 팽팽하던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패이고 고슴도치 털 같던 상고머리에는 어느덧 하얀꽃이 피었지만 그들의 대화엔 세월의 무게가 조금도 실려있지 않다. 어떨 때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자연스레 오간다.
 까까머리에 새까만 교복 입고 오직 희망만으로 가슴 벅찼던 ‘그 시절 그 친구’인 것이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어서인지 이들의 우정도 각별하다. 집안의 경조사를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따금 부부동반 모임도 갖는다. 물론 고향에서 열리는 전체 동우회 모임에도 대부분 참석한다.
 재경 동우회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난 65년. 아역배우 출신이자 동산고 6회인 신종배씨(65)가 동창 이양훈씨와 뜻을 같이 하면서이다.
 “선배 후배님들도 그렇지만 우리 6회 동창 가운데는 수재가 참 많았어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신씨는 자신들의 기수 자랑에 여념이 없다.
 “동창만큼 좋고 편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우리 동창들은 끊임없이 만나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할 겁니다.” 재경 동우회 회장이자 6기 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태씨는 보다 좋은 동창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손미경·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