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업무 아냐” 관련 진정 기각
지자체 “중구난방…불평등 야기”
“여성 안전 근무환경 먼저” 지적도
국가인권위원회<br>[연합뉴스TV 제공]<br>
▲ 국가인권위원회 전경./사진제공=연합뉴스

남성 공무원의 야간 숙직 근무 전담이 차별이 아니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양성평등’ 문화를 확산해가던 일선 지방자치단체가 혼란에 빠졌다. 일각에선 성별 구분 없이 업무 상황에 맞춘 시스템과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이 우선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인천일보 취재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인권위는 정상 근무시간이 끝난 때부터 다음날 정상근무 전까지 야간시간대에 근무하는 ‘숙직’을 남성 직원에게만 전담하게 한 결정이 ‘차별이 아니라’며 관련 진정을 기각했다.

야간 숙직 시 한 차례 순찰을 하지만 나머지 업무는 일직과 비슷하고 대부분 숙직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내부 업무라 특별히 더 고된 업무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인권위는 “현재 숙직 업무가 현저히 불리한 업무라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에게 일률적으로 야간 숙직 근무를 부과하는 건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 평등에 불과하다”며 여성들은 폭력 등 위험 상황에 취약할 수 있고, 이들이 야간에 갖는 공포와 불안감을 간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정에 일부 지자체는 인권위 결과를 중구난방 다르게 받아들이며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성 직원만 본청 숙직 근무를 서고 있는 고양시의 경우, 사내에선 직원들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남성 전담 근무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본청 내 도입에 대해선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본청 공무원 1079명 중 남성 직원이 588명, 여성 직원이 491명으로 남성 수가 100여명 더 많아 순환근무가 훨씬 수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을 실시해 지난해 9월부터 3개 구청을 대상으로는 여성 공무원의 통합 숙직 시스템을 시범 도입, 운영하고 있지만, 본청에선 여전히 여성은 토요일과 공휴일 낮 시간대 근무하는 ‘일직’만 참여 중이다. 여기에 인권위 결정까지 더해지면 남성 공무원의 숙직 독박 부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반면 부천시는 인권위 결과와 상관없이 내년 2월부터 ‘통합당직’ 시스템 도입할 예정이다. 전체 공무원 2620명 중 여성 직원이 1481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남성 직원 전담 숙직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부천시 역시 두 차례의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7대3 비율로 여성의 숙직 근무에 찬성 의견이 많음을 확인해 ‘통합당직 시스템’ 도입을 앞두고 있다.

당직 근무에 대해선 행정안전부에서도 지자체 재량 사안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인권위 결정과 관계없이 특히 야간 숙직 근무와 같은 첨예한 사안은 직원들의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현장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통합 시스템 도입을 위해선 보안 강화 등을 통한 안전한 근무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통합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야간 근무 중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성 직원들의 안전 문제”라며 “야간 근무를 하다보면 교통사고 잔해물 처리, 재난 상황 확인 등 현장 출동 업무가 자주 발생하기도 해, 아무래도 여성 직원에겐 불리한 근무 환경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여성 직원이 야간에 근무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야간 근무를 중점적으로 하는 타 부서와 협력해 현장 출동 업무를 최소화하는 등 통합당직 시스템 시행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