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다롄을 일궈 낸 사람은 한마디로 붜시라이(薄熙來·53)다.
 94년부터 다롄 시장을 맡아 다롄을 세계적인 도시로 키워냈고 그 업적을 인정받아 2000년 말 랴오닝성장으로 승진했다.
 성 정부는 랴오닝성의 성도(省都)인 선양(沈陽)시에 있지만 붜 성장은 한달의 절반 가량을 다롄에서 보내며 국내·외 손님들을 맞기에 분주하다.
 중국의 차차기 뉴리더로 손꼽히는 그와의 교분을 쌓기 위한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출신 성분이 좋은 그는 이른바 타이즈당(太子黨)의 일원이다.
 초창기 공산주의 경제 이론 전문가이자 중국 공산당의 살아있는 전설 붜이퍼(薄一波·91)가 붜 성장의 아버지다.
 게다가 베이징대 역사학부 출신, 파리 유학, 전 세계 외자를 끌어당겨 다롄을 중국 최고의 도시로 만든 개혁 개방의 실적, 젊은 나이, 걸출한 외모, 전 중국에 걸친 인지도와 대중적 인기 등이 겹쳐지면 그가 명실상부한 차차기 뉴리더라는 칭호에 부족함이 없다.
 2002년 7월14일 다롄 영빈관,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해 한국 취재기자들을 위한 인터뷰 석상에서 차차기 중국 지도자론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런 얘긴 잘 들은 적이 없다, 밥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하자”라며 손사래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 21세기 중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눈빛이 번뜩거렸다.
 “한국 기업가들은 정말 장점이 많습니다. 공장에 가보면 중국 근로자들이 아침에 체조를 하게 만들고…, 기업가로서의 정신 상태가 훌륭한데 인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요?”
 랴오닝성 정부 직원들은 한밤중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성장이 불쑥불쑥 전화를 하기 때문.
 축구를 좋아한다는 붜 성장은 일 중독증 환자로 정평이 나있다. <권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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