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사람은 다롄(大連)엘 가면 부끄럽다.
 ‘같은 항구 도시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기도 하고 ‘여기가 중국 맞나’ 싶기도 해 만감이 교차한다.
 산둥성의 웨이하이를 비롯, 옌타이나 칭다오 등의 도시가 한국, 그것도 인천과의 항로 개설로 도시 발전에 적지 않은 덕을 봤을 것이라는 우쭐함으로 다롄을 대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등 온 세계 자본들이 모여있는 문자 그대로의 국제 도시 다롄에서 인천이라는 도시는 왜 그렇게 왜소한지….
 우리보다 분명 몇 수 아래여야 마땅할 중국임에도 정작 다롄은 몇 수 위의 도시 수준이 어떤 것임을 도시 전체가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롄의 바다는 맑고 푸르다.
 항구 전체에 10만t급의 선박이 도크 없이 정박 가능한데다 컨테이너 전용 부두가 바로 철로로 연결돼 있고 벌크 화물이나 더티 화물은 시 외곽으로 확실히 분리돼 도심의 환경 공해와 무관하다.
 국제항이고 공항도 동북 3성의 주요 국제공항이다.
다롄의 도심은 깨끗하고 휘황찬란하다.
 도시 어디를 가도 초록빛으로 둘러싸인 다롄은 도시 전체의 녹지 비율이 40%를 넘는다. 잔디와 화초로 잘 가꾸어진 녹지마다 스프링쿨러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도시화 과정에서 으fp 말썽이게 마련인 공해와 먼지도 별반 찾아볼 길 없다.
 쭉쭉 뻗은 수십개의 마천루 사이로 서있는 도심의 가로등은 거의 샹들리에 수준이다.
 ‘남주해 북대련’(南珠海 北大連·중국내에서 환경이 깨끗하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남방에서는 마카오 인근의 주하이, 북방에서는 다롄이라는 뜻)이라는 말과 ‘중국 북방의 진주’라는 칭호는 빈말이 아니다.
 
 <외세 침략의 표징 다롄>
 다롄은 랴오닝성(遼寧省)의 남쪽 끝자락이자 요동반도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위도로는 북한의 평양과 남포 수준이고 도시 인구는 5백50만명 정도.
 해양성 기후로 겨울에 그닥 춥지 않고 헤이룽쟝이나 지린성 등 중국의 동북 3성 사람들이 여름 해수욕을 위해 다롄의 바닷가는 늘 붐빌 정도다.
 원래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다롄의 근세 100여년 역사는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돼 있다.
 1894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러시아에 조차된 다롄은 비로소 근대 항만으로 개발된다. 10년 후 다시 러일전쟁이 터졌고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다롄을 넘겨받아 만주 공략의 기지로 삼는다.
 중국 공산당의 집권 직후인 1950년 다롄은 바로 밑의 뤼순(旅順, 중국의 해군 기지)과 합쳐져 뤼다(旅大)로 불리다 1981년 다시 다롄으로 분리됐다.
 역사의 상흔들은 지금도 다롄 시가지에 그대로 남아있다.
 도심의 러시아풍 건축물들은 우리의 덕수궁 석조전을 연상시키고 다롄시청 앞을 중심으로 한 도시 계획은 일본인들의 구획 정리 그대로다.
 중국 여행이 자유화된 후 일본인들이 가장 애착을 갖고 찾아나섰던 곳이 다롄이었고 지금도 다롄은 일본인들의 투자가 가장 많은 곳중 하나다. 중국의 바닷가 아무데서도 회를 먹지 않던 시절, 다롄에는 옛 일본의 풍취가 남아 회 요리가 남아 있었다.
 
 <도시개발의 기적>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던 1992년.
개혁개방의 열풍이 아직 북방까지 제대로 미치지 않던 시절, 다롄은 그저 랴오닝성 끝자락의 평범한 항구 도시에 불과했다.
 도시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공장과 집집마다에선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다롄은 중국내 어느 도시보다 가장 멋진 탈바꿈을 완성시킨 도시중 하나가 됐다.
 거대한 빌딩과 호텔들이 즐비한 외형상의 변화뿐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 수준조차도 유럽의 여느 선진 도시 못지않다. 축구의 도시이자 패션의 도시다.
 중국 어느 도시를 가도 택시를 타면 승객과 운전사 좌석 사이는 플라스틱 투명 유리로 막혀있다. 택시 강도가 겁이 나서다. 다롄의 택시에는 그게 없다.
 개발이 진행중인 중국의 거의 모든 도시마다 골치 아픈 공해 문제가 다롄에는 없다. 내·외국인 회사를 막론하고 시 외곽으로 내쫓거나 그도 아니면 공해 방지시설을 완비해야 한다.
 가로공원마다 여성 기마 경찰대원들이 유유히 순찰을 돌고 침을 뱉거나 담배 꽁초, 휴지 등을 함부로 버리다 들통 나면 경을 친다.
 다롄 바닷가 단애에 위치한 진스(金石)골프장은 전 세계 골프장 순위중 6위를 차지했다.
 쓰레기장을 매립해 만든 싱하이(星海)전람회장 주변으로는 유럽 고성(古城)풍의 아파트와 호텔들이 들어서고 시내 곳곳으로 도시 고속도로와 경전철이 새로 길을 뚫은 건 2002년 가장 최근의 변화들이다.
 “다롄 시민들은 누구랄 것 없이 애향심이 대단합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이렇게 아름답게 변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민 자발적으로 환경보호와 도시가꾸기에 나섭니다.”
 1991년 지린에서 다롄으로 이사온 뒤부터 도시의 변화를 지켜봤다는 김옥화씨(31·조선족)의 얘기를 듣다보면 ‘다롄 따라 배우기’라도 해야 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다롄에는 중국내 각 성 각 도시 관계자의 벤치마킹을 위한 참관단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권혁철기자> micleok@incheontimes.com
 
  사진설명
 
1. 다롄시의 야경. 항구 도시이자 국제 공항을 끼고 있는 다롄은 온 세계 투자자들이 모여 ‘중국 북방의 진주’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국제 도시를 만들어냈다. 도심의 가로등은 저택의 샹들리에를 능가하고 밤 풍경은 휘황찬란하다. 이 모든 변화는 지난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2. 다롄시 인민정부 청사 앞의 잔디 정원을 젊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기마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인천시가 시청 앞에 미관광장을 만든 건 전임 최기선 시장이 다롄시를 방문했다가 감동받아서다.
  3. 싱하이(星海) 국제전람회장.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이 지역은 상전벽해를 이뤘다. 국제 규모의 전시장과 컨벤션센터가 즐비하다. 비단 이 지역 아니더라도 다롄시의 도시 전역은 공원과 다름없다.
  4. 붜시라이 요령성장은 오늘의 다롄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차차기 중국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 붜 성장을 만나려는 발길이 줄을 서고 있다.
  5. 95년부터 인천과 다롄의 바닷길을 이어온 대인호는 다롄이 패션도시로 성장하는데 핵심키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