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중국을 미래와 현재, 그리고 과거가 공존하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끝없이 넓은 대륙에 13억이라는 인구가 말해주듯 음지와 양지, 규제와 개방이 함께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중에도 뒤늦게 자본주의사회를 향한 바닷길을 연 후 사통팔달의 입체교통망을 내세워 발빠른 개방의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산둥성 옌타이(烟台)는 900㎞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도심의 형태에서부터 국제화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도시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옌타이시 주최로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에서 투자환경 및 무역설명회를 갖는 등 친한국형 도시로 거듭나려는 시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는 곳이다.

 ▲‘따이공님’이라 불러줘요
 탈북자문제 등 한·중간의 외교적인 갈등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던 8월 마지막주. 인천항을 출발해 옌타이로 향하는 향설란호 선상은 여느 때 같지 않은 분위기다.
 한국에서의 입국물품 규제에 따라 9월부터 중국도 화물을 1인 25㎏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따이공’(戴工)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보따리상들은 그야말로 ‘실직전야’와 같은 분위기이다.
 이들이 주로 가지고 들어가는 물건은 중국 현지의 한국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부자재들. 다른 항구의 규제가 심해지자 옌타이항으로 소화물들이 모여들고 있는 형편이지만 불만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농산물 10만원을 잡자고 1억원의 국가 이익을 포기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어렵게 쌓아온 중국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뒤로한 채 하루아침에 일거리를 잃게된 것도 아쉽지만 그동안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느닷없이 밀수꾼 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대기업보다 먼저 휴대폰에서 연수기까지 수출길을 연 이들이고 보면 중국 개방의 숨은 주역이라는 표현도 억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산둥 거인…옌타이 쾌남
 수호지에 나오는 산둥성 출신의 장사 무송이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산둥사람들은 팔척거인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그 산둥성 중에도 옌타이 남자들은 호쾌한 남아의 기질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들로 통한다. 매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라는 것.
 그래선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보따리상들의 소화물이 통관되던 날, 옌타이세관에서는 화물검사 없이 모든 물건을 통과시키는 마지막 인심 아닌 인심까지 베풀었다.
 명나라 때 왜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는 옌타이는 원래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아편전쟁 이후 상업도시로 발전해 1938년 시로 승격됐다.
 현재 사용하는 항구는 1915년 네덜란드인이 건설한 부동항(不凍港)으로 대형선박의 출입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지만 옌타이시에서는 물동량을 늘리기 위해 몇해전부터 북동쪽 해안에는 대규모 신항만을 또다시 건설중에 있다.
 인구 6백80만의 공업도시인 이곳은 공항, 항만, 철도, 고속도로를 통해 물류거점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시 차원에서 간접투자시설 확충과 물류정보화 실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일·해산물 먹거리천국
 시내 옌타이산공원을 시작으로 봉래관광구와 금사탄공원, 양마도관광지, 곤륜산 등 이름난 하루코스의 관광지들이 많지만 옌타이에서 가장 관광객들의 구미를 당기는 건 역시 먹거리다.
 산과 바다를 끼고 있어 자연환경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밥상에 해산물이 떨어질 날이 없다는 이곳은 해안의 풍부한 수산물이 자랑거리다.
 때문에 중국 4대 요리의 하나인 ‘루차이(魯菜)’라고도 불리는 산둥요리의 발원지로도 알려져 있다.
 산둥요리는 풍부한 해산물에 다섯가지 맛을 더해 복잡하지 않은 맛을 내는 게 특징. 또 후식으로 쓰이는 수타면(手打麵)도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과일의 고향’으로 불릴 만큼 최고의 과일산지인 이곳은 재래시장 어디서나 각양각색의 과일들을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재배역사가 깊고 독특한 맛을 내는 사과는 100가지가 넘는 다양한 품종을 자랑한다.
 시내 한복판의 승리로 일대에는 매일 오후 6시부터 대규모 야시장이 들어서 각양각색의 물건들과 먹거리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잘 닫히는 문이 잘 열린다.
 최근 들어 옌타이만큼 한국인이 급격히 늘어난 도시도 드물다. 내산구, 척산구, 개발구 등에 대우중공업과 대우자동차, LG전자통신, 에스콰이어 등 1,300여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는데다 동부지역에 위치한 옌타이대학에는 한국유학생들이 늘어 별도의 한국촌이 형성돼 있을 정도. 특히 이 부근 특정주택지의 20% 가까이가 한국인 소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옌타이에 한국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게 된 것은 2000년 10월 인천∼옌타이간 항로가 개설되면서부터.
 원래는 한국과의 첫 항로개설로 톡톡한 재미를 본 웨이하이(威海)보다 앞서 항로개설 의사를 타진해 온 도시가 바로 옌타이라는 것. 물론 당시만 해도 수용할 만한 여건이 안됐지만 옌타이 사람들도 이웃항구의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심경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젠 인천에서 출항하는 7개 중국항로중 통관분야에서 가장 관대한 항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잘 닫혀지는 문은 잘 열리게 마련이다’라는 중국격언이 그대로 어울리는 대목이다.
 더욱이 기술과 시설·장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진행중이지만 양도시를 연결하는 한·중간 열차페리운영사업이 빠르면 2007년 운항을 목표로 추진중에 있어 인천과 옌타이는 조용한 밀월을 꿈꾸며 새로운 장밋빛 구상에 부풀어 있다. <글·사진 이원구기자> jjlwk@incheontimes.com
 
 사진1-옌타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된 봉수대가 자리한 옌타이산공원에 올라서면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시내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2-과일이 유명한 산둥성에서도 이름이 난 과일산지인 옌타이 재래시장에서는 각양각색의 과일이 전시된 상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3-향설란호 갑판에서 바라본 인천시내 전경. 멀리 월미도와 남항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4-옌타이항 여객터미널 부근에서는 어렵지 않게 한국상인들을 만날 수 있어 낯설지 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5-대우중공업 등 한국기업들이 대거 진출한 옌타이시 개발구 입구에 위치한 인공폭포.
 
 ▲향설란호는 어떤 배?
 지난 3월부터 매주 3항차씩 인천과 옌타이를 운항해온 (주)한중훼리의 향설란호는 ‘떠다니는 해상호텔’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여객선.
 1만6천t급에 392명이 정원인 이 배는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정기선 중 유일하게 크루즈선으로 설계된 선박이어서 선내에 대부분의 위락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레스토랑과 전망 좋은 커피숍, 나이트클럽, 게임룸. 실외수영장, 사우나 등을 갖추고 있고 마사지실과 미용실, 헬스장 등도 별도로 마련돼 있어 인천∼옌타이간 항해시간인 16시간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또 이 배에는 다른 배에 없는 균형유지장치로 고래의 옆날개와 같은 역할을 하는 스테빌라이저(Stabilizer)가 장착돼 있어 웬만한 파도에도 흔들림 없이 선상여행을 즐길 수 있다.
 객실은 VIP룸(가족실)과 특등실(2인1실), 1등실(4인1실)로 나뉘어져 있고 다른 배들과 마찬가지로 선상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선내 영업팀의 친절한 안내와 서비스도 이 배의 특징이며 특히 중국 의사 출신으로 6년간 이 배를 타면서 집에서 지낸 적이 1개월도 안된다는 빠우리청(52·包力成) 사무장의 꼼꼼한 일정체크와 구수한 덕담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글·사진 이원구기자> jjlwk@incheontimes.com
 
 사진6-향설란호 선내 안내데스크
 사진7-찜질방과 마사지 시설을 갖춘 사우나
 사진8-헬스기구 이용이 가능한 헬스룸
 사진9-승객휴게실로도 사용되는 스탠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