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 펠리페 씨

“한국서 계속 살고 싶어요”

콜롬비아 외할아버지 '1년 참전'
어릴때부터 영웅담 등 많이 들어
코로나 걸려 다시 못오시고 운명

유학온 후 정착, 직장 생활·사업
바람은 두나라 오가며 비즈니스

6·25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참 많은 상처를 남겼다. 북쪽의 피난민이 인천으로 대거 내려오기도 했으며, 수많은 국가의 군인들이 인천항을 통해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북쪽에서 탈출한 이주민이 인천공항과 인천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인천 서구에는 콜롬비아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인천과 콜롬비아의 우호 관계를 상징적으로 알 수 있다. 콜롬비아 참전용사의 후손도 인천에서 살고 있다.

펠리페 게레로 풀리도(36)의 외할아버지인 카를로스 호세 풀리도씨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1952년 인천항으로 들어와 전쟁에 1년여 동안 전쟁에 참전했다.

펠리페씨는 할아버지가 한국을 찾은 지 61년이 지난 후인 지난 2013년 유학차 한국을 찾았다.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카를로스는 “죽기 전에 한국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고 했다. 2년 전에는 인천방문 일정까지 잡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펠리페씨 목소리에는 아쉬움과 그리움, 슬픔이 가득했다. “할아버지 이야기하는 거 슬퍼요. 두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나이 92세였는데 솔직히 건강 완전 괜찮았어요. 코로나 걸려 돌아가셨어요”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한국에 관심을 가졌고, 유학생활과 이후 직장생활, 사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바람은 양국이 함께 도움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과 콜롬비아 간 교류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최근 들어 K-pop, K-드라마 인기도 높아지고요. 한국의 첨단기술과 콜롬비아의 커피 등의 대표상품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양국을 오가며 비즈니스 하며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탈북민과 함께하는 신영욱 목사

“北서 온 '2등 시민' 꼬리표”

국내 3만5000명 중 인천에 3000
2000명 이상이 논현동 집중 거주

가장 힘든 부분은 北 가족·일자리
20년 지났어도 여전한 차별·편견
이제는 더불어 살 사회적 포용을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수십 년 동안 남북이 단절되며 많은 문화적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식량난에 수많은 주민이 탈출해 남쪽으로 오고 있다. 인천에도 탈북인들이 남동공단 주변에 모여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영욱 목사는 “한국에 들어와 계신 분들이 한 3만5천 명 정도 되는데 인천에 한 3천 명 정도 들어와 계시고요 그중에 이천 명이 넘는 분들이 남동구 논현동에 집중적으로 들어와서 거주하고 계십니다”고 설명했다.

신 목사는 이어 “지금 한국 사회가 아직 그분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없는 것 같고 또 한국의 교회들도 그분들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서 힘이 없지만 몇몇이라도 그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일자리와 북에 두고 온 가족 문제라고 신 목사는 알려준다.

그는 “북에서는 어쨌든 정부가 일자리를 확보를 해주잖아요. 한국에서는 그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제일 힘든 부분이죠. 다른 하나는 북쪽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어떻게 남쪽에 데리고 올 거냐 그게 그분들에게는 제일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탈북민들이 취업한 후에도 문제는 계속됩니다.

신 목사는 “취업을 시켰는데 사실은 일을 하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서 능률이 떨어집니다. 언어적으로 외국인들보다는 잘 소통이 될 것 같은데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들 같은 경우에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동일한 시스템 속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근데 반해서 이분들은 전혀 다른 사회 체제 안에서 오신 분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잘 안 돼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한국에 와서 5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탈북민이라는 차별은 존재한다고 한다.

“2등 시민 그런 삶이 너무 힘들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당장 사회복지 이런 개념으로 접근해서 그분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드리는 것도 좋지만 더는 그분들에게 어떤 꼬리표는 달지 말고 그냥 자연스러운 이웃으로 이렇게 받아들이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는 북에서 오신 탈북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시점이 왔다고 신 목사는 얘기합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은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런 편견을 버리고 호남이나 영남에서 온 분처럼 그냥 북쪽에서 이사 오신 분들이니까 우리가 우리 동네에 이분들이랑 같이 어떻게 더불어서 같이 살 것인가 이제 그런 쪽으로 우리의 생각을 좀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주말이면 '세 손가락' 펴는 부평역 앞

관광객들 북적 차이나타운 대표적
요즘 떠오르는 연수구 고려인마을
부평역 5번 출구는 미얀마인 성지

인하·인천대서 수많은 유학생 생활
송도국제도시 귀환 아메리칸 타운
남동공단 주변·송도유원지 일대도

▲ 인천의 이주민 지도./그래픽 이연선 기자
▲ 인천의 이주민 지도./이연선 그래픽 기자

인천에는 많은 이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붐비는 인천 중국 차이나타운이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100년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중국 화교의 역사, 바로 인천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화교의 대표 유산은 바로 자장면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또 다른 유산인 중국무술, 특히 팔괘장이 주목받고 있다. 팔괘장은 산둥 출신의 노수산 무술가가 인천에 넘어와 확산시켰다. 화교와 한국인 가리지 않고 가르쳐 지금은 양쪽 모두 무술이 전수되고 있다.

요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고려인 마을이 있다. 바로 연수구 함박마을. 90년대부터 하나둘 모여들더니 이제는 타운을 형성했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일대 고려인들의 문화가 한국문화와 만나 색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이곳에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후손인 최일리야와 이 콘스탄틴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맨몸으로 한국 땅을 밟은 그들에게 고려인과 인천시민들이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다. 전쟁의 상처가 한국에서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인천 부평역 5번 출구는 한국 미얀마인들의 성지다. 당초 부평역은 미얀마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이곳에는 미얀마 음식점과 가게, 무엇보다 그들이 믿는 불교 사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이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으로 만남의 장소에서 성지로 변했다. 서울에는 공식적인 미얀마 대사관이 있지만, 미얀마인들은 군부독재에 편입된 그들을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다. 바로 부평역에 있는 주대한민국 미얀마연방공화국 대표부를 그들의 공식적인 대표로 인정하고 있다. 주말이면 부평역 앞에서 손가락 세 개를 펴며 미얀마 민주화를 염원하는 미얀마 청년의 바람을 응원한다.

송도국제도시에는 아메리칸 타운이 있다. 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떠났던 우리의 이웃이 다시 한국에 돌아와 살 수 있도록 타운을 만든 것이다. 이곳에도 새롭게 이주민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있다.

대부분 미주지역으로 이민을 떠났다 다시 돌아온 케이스로 고국이 그리웠던 만큼 하루하루가 그들에게는 소중하다.

인천의 대표대학인 인하대와 인천대에도 많은 유학생이 생활하고 있다.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외국인 유학생들의 발길이 인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천은 유학생들에게 특별하다. 한국에 도착해 처음으로 밟는 땅이 인천인만큼 호감이 가는 도시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에 송도 글로벌캠퍼스 등 유학생활에 도움이 되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인천 대표대학인 인천대와 인하대가 유학생 학업을 위해 별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인천에 머무는 유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천 남동공단 주변 논현동 일대에는 다양한 이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공단 주변을 중심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나라별로, 종교별로, 민족별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 사할린 동포들의 둥지로 마련돼 있다.

이 밖에도 남동구 구월동 일대에는 외국인결혼이주자들이 많다. 이곳이 교통이나 쇼핑, 교육 등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천외국인지원센터가 위치해 각종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다.

중고차 수출단지로 부상하고 있는 송도유원지 일대에는 중동 출신 사업가와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 가고 있으며, 인천 곳곳에 들어선 이슬람 사원은 무슬림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천-하와이 이주 120주년을 맞아 인천을 떠나간 이주민과 함께 인천으로 들어온 다양한 이주민들을 만났다. 그동안 드문드문 알던 사실들이 연결해보니 상당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포용과 다양성을 표방하는 디아스포라 도시 인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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