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경 탐사보도부장(부국장).<br>
▲ 이은경 편집국 국차장 겸 탐사보도부장(부국장).

인천이라는 도시는 보물창고다. 개항도시에다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여러 문물이 인천이라는 도시를 통해 들어와 전국으로 퍼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호텔, 최초의 서양식 공원, 우정 업무의 효시인 인천우체국,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 등대. 이렇듯 최초가 하나둘이 아니다. 짜장면과 쫄면 등 전 국민의 먹거리도 인천에서 출발했다.

스포츠 역시 다르겠는가. 축구의 경우 1882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인들이 축구를 한 후 남기고 간 축구공을 시작으로 축구라는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전해진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도입된 시기는 1905년으로 기술돼 있지만 1899년 인천영어야학교에 다니던 일본인 학생 일기장에서 '베쓰볼'을 했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이를 고려하면 인천의 야구 역사는 120년이 훌쩍 넘는다. 1927년 한국 최초 한인야구단 '한용단'도 인천이다. 특히 올해 국내 프로야구 40년을 맞으면서 구도 인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40년 동안 인천프로야구는 그야말로 구도 인천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모진 팔자를 겪어야 했다. 삼미슈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현대유니콘스, SK와이번스에 이어 SSG랜더스까지 무려 6번이나 지역 연고팀이 바뀌었다. 사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과거 서울의 배후도시라는 임무가 주어지면서 산업공단이 조성됐고 발전소가 여기저기 들어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일을 맡아왔다. 근대에 들어서 모든 것이 최초이고 하루하루가 역사였던 인천이 제 가치를 온전히 주목받지 못한 채 남의 들러리를 선 도시로 전락했다고도 볼 수 있다. 혹자는 인천을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여러 운동경기 중 인기가 많은 프로야구는 최근 인천을 다시 보게 하고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수만 명이 모여 '인천'을 연호하며 가요 '연안부두'를 부르고 있다.

인천 연고 프로팀을 응원하는 것을 넘어 인천이라는 도시를 응원하는 것으로 들릴 정도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이름을 힘껏 외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인천이라는 도시 영문이름이 적힌 유니폼은 오래전 인천 야구 역사를 끄집어내게 만들기도 했다. 와이번스 시절 사용된 인천군 유니폼은 SSG인수 후 재해석돼 선보였다. 그러나 팬들이 반발했다. 역사가 있는 인천군 유니폼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진 것이다.

결국 SSG는 1947년 전국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인천 대표팀 인천군 유니폼을 재현했다. 당초 인천군 특유의 아이보리 톤 유니폼 컬러는 유지하고 모자 로고도 그시절 인천군 모자에 새겨진 제물포 영문표기법 'Chemulpo'의 앞글자 'C'를 넣었다. 프로야구 유니폼이 인천 야구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인천 프로야구는 관중 수 1위를 기록 하며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9월17일 기준 10개 구단 중 SSG랜더스 관중수는 83만9580명으로 고정팬이 많은 타팀을 제치고 1위다. 이제야 구도 인천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위치를 찾아가는 것 같다.

인천 야구는 또 다른 시도 중이다. 인천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신세계그룹이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면서다. 그룹 측은 2만명 규모의 국내 최고의 최첨단 돔구장을 강조하고 있다.

최초의 도시 인천에서 최고의 돔구장이 만나 인천시민들과 함께 새롭게 써 내려 갈 이야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돔구장을 만난다는 기대감과 함께 인천의 굴곡진 야구사도 이제 끝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 이름을 건 야구공은 그저 단순한 공이 아니다. 하나의 야구공이 인천을 뭉치게 또는 인천을 재발견하게 만들 수 있다.

/이은경 편집국 국차장 겸 탐사보도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