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개항(1883년) 후 인천은 목재산업의 '성지'로 알려져 왔다. 원목을 수입해 가공할 수 있는 항만과 주변 환경 등이 잘 갖춰졌기 때문이다. 인천의 '뿌리산업'으로도 일컬어진다. 한때 국내 목재산업의 70% 이상을 차지했다고 하니, 인천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력이 어땠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기와 맞물려 활성화한 목재 관련 업종은 요즘도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대개 수입을 하는 원목은 각종 가구를 만드는 데로 이어진다. 유독 인천에 가구공장이 많은 까닭이다. 현재 '00가구' 등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가구회사들도 인천에서 출발해 큰 기업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싸리재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길 양쪽엔 갖가지 가구점이 늘어서 있었다. 인천시민들은 물론 경향 각지에서 온 소비자들이 가구를 구입해 가던 시절을 기억한다. 오늘날엔 전국 여기저기에 가구 전문 판매장이 들어서 소비자의 발길을 끌지만, 그 시절 한 곳에 밀집한 가구점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싸리재 가구점'들이 성황을 누렸다.

나이 지긋한 인천인이라면 '대성목재'를 모르지 않는다. 툭하면 이 회사를 둘러싼 말들이 흘러나와서다. 그만큼 대성목재는 한때 인천인들의 설왕설래 대상이었다. 대성목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6년 만석동에서 '조선목재'로 출발했다. 국내 최초의 합판 제조공장이었다. 당시 합판은 첨단 물질로서, 여기선 건축자재나 가구가 아닌 항공기 소재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목재는 1945년 해방과 함께 개인에게 경영권을 넘겨 이름을 대성목재로 변경했다. 그러다가 1955년 국내 종합상사 원조격인 '천우사'를 새 주인으로 맞은 후 1960년대 합판 1억달러 수출을 주도했다. 천우사는 1964∼1966년 용현동과 북성동에 잇따라 합판공장을 지어 사업을 확대한다. 대성목재는 한때 직원수 6000여명에 달하고, 1965년엔 재계랭킹 5위를 넘봤을 정도였다. 이후 부실경영으로 인해 1969년부터 사주가 9번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0년부터는 경쟁업체였던 동화기업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인천의 향토기업인 대성목재가 동화기업에 흡수합병된다는 소식이다. 합병기일은 오는 12월1일이다. 오랫동안 내세웠던 대성목재의 간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얘기다. 동화기업은 대성목재공업 주식을 100% 소유하고 있다.

인천을 대표하는 목재산업이 다른 첨단산업에 밀려 관심을 덜 받는 게 현실이다. 업계에선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좀더 집약된 목재 단지를 인천 신항에 조성하길 바란다. 대성목재를 인수하면서 국내 1위 목재기업으로 발돋움한 동화기업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