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한 구절이다. 1936년 10월 잡지 '조광'(朝光)에 실렸던 이 소설을 학창시절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소설에선 상당히 많은 부분을 묘사하면서 그 질을 매우 높여 한국 소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는다. 작품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은 이 작품 덕에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메밀의 어원은 '산(뫼, 메)에서 나는 밀'이다. 서늘한 기후와 메마른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병충해에 강하고, 생장기간이 짧아 주로 산간 지방에서 재배한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60일 남짓 걸려 구황작물 중 최고로 친다. 9월쯤 개화한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보이듯 흰색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내 주요 생산지론 제주도와 강원도를 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평양냉면과 춘천막국수 등의 주 원료는 메밀이다. 구릉지가 널리 분포한 덕분에 일찌기 메밀을 심은 결과가 인기 음식으로 이어졌다고 여겨진다. 메밀은 건강식으로도 취급되기도 한다. 혈압 억제에 효능이 있는 루틴 함량이 높아 고혈압 환자 식이요법에 사용된다. 메밀로 만든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이젠 전국적으로 냉면·막국수집이 즐비한 상태다.

인천에도 메밀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역사적으론 인천 개항(1883년) 후 한창 때 냉면집이 정말 많았는데, 하도 맛이 좋아 서울에서 시켜 먹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그 맛과 멋은 이어져 인천 곳곳에서 성업 중이다. 이름난 냉면집들은 메밀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인천의 냉면집을 전전하다 보면, 유독 '백령'이란 음식점 간판을 자주 발견한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특산품이 메밀이어서다. 그런데 그 생산량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여서 안타깝다. 옹진군에 따르면 백령도의 메밀 재배 농가는 2018년 244곳에서 지난해 74곳으로 70% 급감했다. 같은 기간 118㏊에 달하던 재배 면적도 42.4㏊로 줄어 생산량 역시 53t에서 9분의 1 수준인 6.7t에 불과했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할 때 '서로 이기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백령도 주요 농작물인 메밀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인천 어느 냉면집을 가도, 지역에서 출하한 메밀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