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인천일보 창간(1988년 7월15일)과 함께 '능허대(凌虛臺)'란 칼럼이 선보였다. 한동안 신문 발매일마다 게재된 이 칼럼은 인천과 관련한 기사에 한걸음 더 나아가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으로 유명했다. 훌륭한 필진이 참여해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능허는 '허공(虛)에 오른다(凌)'는 뜻이다. '정신세계가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에선 접근하기 힘든 데서 '세상 모든 일을 잊고 편히 쉬라'고 능허를 표현한다. 차안과 피안의 경계로,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함을 뜻한다. 여기에서 뗏목을 타고 저편 강기슭에 다다름을 비유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능허대는 인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으로 여겨진다.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능허대는 마치 인천을 상징하는 듯하다. 지금도 황해를 기반으로 해양강국의 이상을 펼치는 인천에 희망을 쏘아 올리는 터로 삼을 만하다. 본보가 칼럼 제목으로 '능허대'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연수구 옥련동에 자리를 잡은 능허대는 백제가 중국을 오갈 때 이용했던 나루터다. 배를 대고 타는 백사장에 있었다. 그곳을 우리말로 한나루, 한자로는 대진(大津)이나 한진(漢津)이라고 불렀다. 1990년 인천시 기념물로 지정됐다.

능허대는 백제가 378년(근초고왕 27)부터 웅진으로 도읍을 옮기던 475년(개로왕 21년)까지 중국과 왕래할 때 출발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백제와 중국과의 교통로를 보면, 고구려로 인해 육로가 막혀 바닷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즈음 사신들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던 데가 바로 능허대 아래 한나루다. 인천시는 이런 역사를 기념해 1988년 공원으로 만들고 정자도 세웠다. '능허대 터'란 표석(標石)과 더불어 '중국 사신의 배를 대던 곳'이란 내용도 덧붙였다.

연수구를 대표하는 행사인 '능허대문화축제'가 4년 만에 시민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2018년 이후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중단됐다가, 오는 9월30일부터 이틀간 송도달빛공원 등지에서 열린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이 축제는 역사성을 근거로 벌여 눈길을 끈다. 백제사신 문화행렬과 능허대 역사 전시 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몇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만큼, 감염병 예방을 위한 조치와 응급체계 구축 등 안전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능허대는 우리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이 꼭 필요하다. 축제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대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선결과제다. 인천이 갖고 있는 고유한 해양도시 정체성을 잘 살려 나갔으면 싶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