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9세…'이형기 문학상' 수상
미국 건너가 시 다국어 출판 계획
“가치 있는 '차이' 위해 떠날 결심”
▲ '제12회 이형기 문학상'을 받은 최문자 시인이 지난달 31일 수원시 금곡동 인근 커피숍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다시 해바라기밭으로 간다. 바깥으로 나가려는 물고기 자세를 하고 오래된 집을 떠난다. 거기 사는 시계들 창문을 열어 줄 것이다'<최문자 시집-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중에서...>

일흔아홉. 최문자 시인이 '차이 나는 삶'을 위한 여행길에 오른다. 일평생 방랑의 충동과 자유의 부채 사이에서 고뇌해 오던 그는 이번에도 '자유'를 택했다.

최 시인은 미국으로 날아가 그간의 써 온 시들의 다국어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비록 낯선 도전 일지라도 당신의 인생에 '차이 나는 삶'을 선물하리라 단언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려 합니다. 그간 발표했던 시를 엮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간할 계획입니다.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저의 시가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지요. 우리의 문학이 해외 도처에서 읽힌다면 그 역시 한국 문학에 기여하는 일이란 생각으로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지난달, 최 시인은 올해로 12회를 맞이한 이형기 문학상에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형기 문학상은 대표적 월간 시 전문지인 '현대 시'에서 선정하는 대한민국의 문학상이다. 시인 이형기의 시적 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기리며 2006년 제정된 시상식이다.

최 시인이 올해 출간한 시집,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가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서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시인이 상을 타기 위해 시를 쓰는 건 아니지요. 쓰지 않으면 못 배기니 쓰는 시일텐데 거기서 상까지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거죠. 그런데 이형기 문학상은 간절히 받고 싶은 상이었어요. 이 선생님은 제가 시인으로 거듭나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형기 문학상만큼은 욕심이 났죠.”

최 시인은 지난날 고 이형기 시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전했다. 이형기 시인의 조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시인 최문자'는 없었을 거라고….

“이형기 선생님과는 현대문학에서 연을 맺었습니다. 현대문학상에서 2번에 고배를 마신 뒤, 한창 고민이 들었죠. 육아에, 논문에, 바쁜 일상에 치여 펜을 놓고 있을 시기에 선생님께서 전화오셔서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신이 주목하고 있는 시인이 저라면서요. 재주 있는 시인인데 왜 시집을 내지 않느냐고요. 바쁜 건 핑계라면서 호되게 채근하셨죠. 그분의 눈에 띈 건 정말 행운이에요.”

수상작인 최 시인의 시집 '해바라기밭에 리트로 넬로'는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엮은 시집이다. 들뢰즈가 주장한 '차이와 반복'이론은 반복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이 '차이'에서 발생된다고 보고 끊임없이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최 시인은 '차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모든 예술인에겐 필요한 덕목으로 설명했다.

시집의 대표작 '해바라기 밭의 리토르넬로'는 최 시인의 어릴 적 회고가 담겨있다. 해바라기 꽃이 되길 바랐던 부친의 바람과 달리 그는 해바라기 꽃 아래 '채송화'를 꿈꿨단다.

“어려서 아버지께서 해바라기밭을 좋아하셨죠. 아버지는 담을 훌쩍 넘은 해바라기 꽃처럼 제가 자라길 원하셨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해바라기꽃 그늘 아래 하하 호호 웃는 채송화로 남겨지길 바랐습니다. 성인이 돼 대학교수가 됐고 총장이 됐고 시인의 자리에 서게 되면서 저는 아버지가 원하셨던 해바라기와 같은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인이라면 채송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해바라기는 낮은 곳을 못 보잖아요. 수직으로만 세상을 들여다보고 싶진 않아요.”

이번 이형기 문학상에 평론을 맡은 정과리 문학평론가(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최문자 시인의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를 두고 '반성하는 떠돌이의 시'라며 자유와 반성을 오가는 서술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끝없이 변주하고 원주를 넓히는 반복으로 무의식의 심연에 진입하고 있는 작품 평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시인은 평론에서와같이 '반성하는 떠돌이'란 수식어에 충실히 하고자 미국행을 꾀했다. 대신 이번 여정에서 '반성'은 없다. 최 시인은 살려 하지 않아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을 뿐이라는 말로 '반성'을 대신했다.

“여든 살을 목전에 뒀지만 서른 살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아요. 가치 있는 '차이'를 위해 저는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숨을 다하는 날까지 남아 시를 쓰고 싶습니다.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은 이들에게 저의 시가 살아 숨쉬길 고대합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